동치미를 담근 이야기를 얼마전에 했지요.
동치미라는 이름보다는 오히려 동치미 국수라는 말이 먼저 생각날만큼, 제게 동치미 국수는 강한 욕구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어린시절에는 동치미같은 밍밍하기까지 한 김치는 선호하지 않기에 오히려 당연한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동치미하면 두세가지의 옛생각이 납니다.
먼저 강렬한 기억으로, 추운 겨울 김장으로 담은 동치미독에서 얼음을 깨치며 꺼내온 동치미에 국수공장에서 막 건조되어 나온 국수를 삶아 고기고명을 얹어 먹던 동치미 국수는 동치미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어린시절임에도 강렬한 맛으로 남아있습니다.
동치미는 아주 오래전부터 소화제 대용으로 사용할만큼 강력한 소화효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나 생강 그리고 파 등에 함유되어 있는 아밀라제등의 소화효소를 자연스럽게 국물에 녹여내고 있기에 동치미 국물 한그릇에 막힌 속이 뻥뚫리는 것은 단지 시원함때문만은 아니겠죠.
두번째의 기억은 조금은 슬픈 기억이네요. 한때 온국민의 난방연료가 연탄이었던 적이 있었죠. 겨울철에는 수도없을만큼 연탄가스중독 사고가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저도 두어차레 연탄가스에 중독이 된적이 있었고 그중 한번은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였네요. ㅠㅠ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어지러운 기억입니다. 그 당시 TV의 정보 프로그램에는 근엄하게 차려입은 의사선생님이나 대학교선생님들이 나와서 연탄가스에는 동치미 국물이 응급치료가 될수 있음을 강조하곤 하였습니다. 사실 CO2 개스가 혈중에 녹아들어가고 뇌로가는 산소를 차단하여 일어나는 것이 연탄가스중독인데, 동치미 국물이 순식간에 그러한 중독을 차단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다만, 차가우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들어가며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릴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독소를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배출되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저도 정신없는 와중에 동치미 국물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연상작용으로 인하여 동치미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일부러 동치미를 찾아먹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미국으로 이주하고서의 일이네요. 일본에서 살림을 했기에 비교적 일본살림이 많았는데, 그중 커다란 비닐봉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쓰레기 봉투였을테지요. 첫겨울을 맞이하기전 김치를 담게 되었는데, 멀리 뉴저지에서 무도 한박스 사와서는 동치미를 담았네요. 처음이었고 양은 (알루미늄) 들통에 직접 김치를 닿게 하는 것이 꺼림칙하여 담근 동치미를 커다란 봉투에 담아 들통에 넣어 시원한 곳에 보관하게 되었지요. 혹시라도 김치가 쉬어질까봐 한동안 꽁꽁싸서 열어보지도 않고 정성을 들였습니다. 커다란 기대감으로 들통을 열어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ㅠㅠ 세상에 일본에서 가져온 커다란 비닐 봉투는 비닐뿐이 아닌 생분해 플라스틱, 즉 전분이 상당히 많이 함유된 친환경 봉투였던거죠. 동치미에는 전분분해효소가 다량....... 다 녹았어욤!!! ㅠㅠ 한동안 그 끈끈하고 거의 국자로 뜨면 동그랗게 떠지던 고체 동치미를 전자렌지로 녹여말어 하며 고민하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ㅎ
암튼, 그뒤로 동치미를 담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담그게 된 동치미....
동치미는 밖에서 한동안 익혀 차가운데 보관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 기간동안 소화효소가 전부 배어나온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김치냉장고에서 익혀서는 제대로 된 동치미가 나올수 없죠. 날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5-7일 가량 밖에서 익히게 되면 국물이 뿌옇게 되면서 표면으로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게 되는게 이때 냉장고로 옮기면 된다고 하네요. 배운대로 얌전하게 따라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동치미......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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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부터 가슴을 뻥뚫어줍니다. 물론 이렇게 커다란 사발에 무를 썰어 함께 내면 그저 손이 자동으로 가네요. 새우깡도 아닌것이.....ㅎㅎㅎ 아니 여보야~ 동치미에 무슨짓을 한거니? ㅎㅎ
물론 이렇게 매끼니 그냥 한사발씩 먹어주기도 하지만, 역시 동치미 하면 동치미 국수 아니겠습니까? ㅎㅎ
지난겨울 한국여행에서 사실은 몇군데에서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먼저 유명하다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열심히 먹은후에 동치미 국수를 시켰습니다. 사실 고기를 먹으면서도 이 동치미 국수가 생각이 나서 빨리 끝내고 국수나 먹었으면.... 할정도였지요. 한 젓가락들고는 조용히 놓았습니다. ㅠㅠ 이렇게 무참히 제 기대를 저버릴수 있는건지..... 어린시절의 추억을 깨지 말아줘~~~
또 한군데의 동치미는 바로 춘천막국수..... 막국수의 밍밍함은 사실 초보자에겐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하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무어라 말할수 없는 밍밍함에 의아해 지던 막국수..... 육수 (동치미 국물+육수?) 를 추가로 달라하여 일부러 육수만 따로 마셔보았는데, 역시 밍밍함의 정체는 바로 그 육수더군요. 동치미 국물의 맛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소위 소박하고 투박하기까지 한 맛이 막국수의 매력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막국수에 그저 동치미 국물만 부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신맛 단맛 나는 여러가지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막국수의 질감도 살리며 소박한 맛도 제대로 내주지 않았을까 하네요. 암튼, 제대로 된 동치미는 아닌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고장의 맛을 제대로 음미해주지 못하는 저의 경박한 입맛때문이겠지만 말이죠. ㅎㅎ
암튼 어린시절 가장 강렬한 국수맛을 떠올리며 일단 다른 것은 없이 동치미 만으로 국수맛을 내보기로 합니다. 동치미는 지수맘이 담았지만, 국수는 바로 제 몫이죠. 원래 제가 한 국수 하는지라 온갖 종류의 국수요리는 제가 다 만듭니다. ㅎㅎㅎ
먼저, 고명으로 올릴 무를 이렇게 납작하게 썰어 둡니다.
거기에 배나 사과같은 과일이 올라가면 좋죠. 찾아보니 배는 없고 사과가 있네요. ㅎㅎㅎ 풋고추도 송송 썰고하여 준비를 마칩니다. 국수는 소금을 조금 넣고 끓이다가 한참 끓은 후에 찬물을 한사발 부어 한숨줄이고 다시 천천히 끓여 속까지 잘 익혀줍니다. 동치미 국물을 냉동고에ㅔ 넣어 살짝 얼려먹으면 좋겠으나 그렇게까지는 못했구요, 그냥 면기에 담아 국물만 부어주었습니다.
자 간단 완성입니다.
이 맛을 전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ㅠㅠ 정말 몇십년을 간직해오던 추억의 맛이 현실이 되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수 없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동치미 무의 식감은 사과에 비할바가 아니구요, 냉면에 딸려 나오는 무김치의 새콤함과는 차원이 다른 맛입니다.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야 알아지는 맛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어릴때도 좋았지만, 이런 깊은 맛은 역시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이런 맛이 가슴속까지 전달이 되네요.
한동안 우리의 대화의 많은 부분이 동치미였을정도입니다.
마당 한켠의 동치미독을 보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고, 시골에도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된 세상이니 그전의 풍취를 맛보기는 힘들지만, 이 깊은 맛과 함께 추억이 살아나니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사실, 동치미는 젓갈등과 같은 동물성재료는 전무합니다. 완전 식물성 재료들 뿐이죠. 그래서인지 냉면에 비하여 감칠맛은 덜한 편입니다. 깔끔하고 깨운한 맛은 그 어디에 비할바가 없지요. 어릴때 먹었던 동치미국수에는 고기고명이 얹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깨끗한 국물에 왠 고기일까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이런 감칠맛을 보완해주려는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냉동실에 늘 있는 냄면용육수를 동치미 국물과 섞어 또 한그릇의 국수를 말았습니다. 또 거기에 또 하나의 예술인 석박지의 국물을 적당히 풀어넣는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동치미 국수는 깔끔함에 감칠맛까지 더해진 정말 엄청난 맛을 내줍니다. 칼칼한 국물맛까지 더해져서 지난 일년간 먹은 음식중에서 가히 1-2위를 다툴만한 맛을 내줍니다.
정말 10년묵은 체증이 내려갈것 같지 않으신가요? ㅎㅎㅎㅎ
동치미의 또 하나의 효능이 있죠. 가장 중요한것중의 하나이기도 할겁니다만..... 바로 숙취의 해소입니다.
후다닥 =3=3=3=3=3=3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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