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제목은 거창하지만, 그저 경험으로 확인한 미국의 의료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조금 딱딱한 내용이 되겠지만, 전반적인 미국의료제도의 허와 실을 짚어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미국의료의 좋은점을 상대적으로 부각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혹시 이 외의 궁금한점은 댓글로.......
해외생활에서 가장 힘겨울때가 바로 아플때라고 하지요. 아픈 본인도 힘겹지만, 가족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랍니다. 저질체력에 몸이 좀 부실한 관계루다가 병원 신세를 좀 질 일이 많아 미국의 의료체계나 병원시스템에 대한 나름의 혜안 (?) 이 생기게 된건 자랑할만한 일도 못되지만.... 암튼, 나름대로 미국의 병원,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겸하여 이야기를 해봅니다.
우선, 사소한 경험담부터......
미국에 오고 한 2년쯤 지나면서 허리에 무리가 갔는지 어느날 일어나려하니 몸이 일으켜지지 않고 급격한 통증에 소리를 지를 지경이 되었습니다. 즉각 주치의에 연락을 하고 바로 office로 가게 되었는데, 간단한 문진과 촉진 등으로 허리디스크인것 같다고 하네요. 우선 전문의에게 보내기 전에 물리치료를 시작하라 하여 그날부터 물리치료를 하였습니다. 전문의와는 며칠후에 약속을 잡고, 미리 MRI를 마치고는 필름을 들고 전문의에게 갔더니 뭐 볼것도 없이...... 암튼, 그렇게 해서 1차 디스크제거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허리수술하면 제법 큰수술로 알았는데 수술 다음날 바로 퇴원을 시켜 무척 황당했다는......
이곳에서는 정말 큰 수술 (심장, 뇌수술 등등) 이 아니면 이틀도 입원을 시키지 않는다네요. 제왕절개를 하여 아이를 낳아도 그다음날 혹은 그 다음다음날 내보내더군요. 저도 암튼 허리수술후 다음날 퇴원하며 정말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의사는 "집에서 많이 걸어" 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조기 퇴원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말들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용문제때문입니다. 건강보험이 있어도 더 이상 보험회사가 커버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퇴원을 시키고, 보험이 없으면 더더욱 병원비 감당을 못하기때문이라네요. 정말 황당하지요.
뭐 암튼 그렇게 회복을 하고 1년반쯤후에 재발을 했습니다. 시골동네에 그래도 제법 큰 종합병원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데..... 그때쯤 참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한 수술의가 수술을 잘못하여 면허를 박탈당했다는...... 한번이 아니라 두번이나 다른쪽 무릎을 열었다네요. 세상에 무슨 그런 의사가 다 있어 하면서 신문 기사를 보니 바로 제 허리를 수술한 의사입니다. 바로 식은땀이 찌익....... 허리가 하나이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제는 너무 시골이라서 후임외과의가 오기 힘들다는 거였습니다. 이런이런..... 나는 아픈데......
결국은 동네의 허리전문의가 저를 3시간 가량 떨어진 Albany의 척추수술전문외과의에게 보냅니다. 두번째라서 재발의 위험도 있으니 척추융합시술을 하기로 하였고, 허리아픈 제가 왕복 6시간의 거리를 몇번을 다녀야 했습니다. 물론, 집사람이 운전을....... 그런 우여곡절로 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고, 대수술이라서 병원에 5일을 머물렀습니다. 한국같으면 보호자 침대도 놓아주고 할텐데, 이곳은 보호자가 병실에 머물지 못하게 합니다. 보호자도 면회시간에만 드나들수 있고 시간이 되면 나가야 하지요. 어린 딸을 친구집에 맡기고 병원까지 따라와서 헬쓱하게 지켜보던 집사람은 시간이 되면 근처 호텔로 나가야 했습니다. 많이 다르지요? 그렇게 5일간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에 왔을때 감정을 억누르며 쳐다보던 딸아이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철모르던 아이가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참.....
다행히 직장을 다니니 보험에 들어있었고, 큰 수술후에도 경제적으로 부담을 갖지는 않았습니다만.......
미국은 국민건강보험이 없이 사보험뿐이라서 (노인과 극빈자를 위한 사회건강보험 제외) 보험이 없으면 아플때의 부담이 말도 못합니다. 이런 커다란 사회적 문제는 대통령선거때마다 커다란 이슈가 되고, 마이클 무어같은 사람은 영하 "씩코"에서 통렬히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할때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선진적이냐 하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하기는 힘듭니다. 또 제가 관여할 문제도 아니지요.
다만 한가지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다른 각도에서는 생각해 볼수 있을듯 하네요. 이곳에는 주치의 제도가 있습니다. 가정의학을 표방하는 의사들이 (보통 소아과 전문의들이 많습니다) 작은 클리닉을 냅니다. 보통 Family Doctor라 불리우는 의사들이 의료의 일차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Primary Care Physician 이라 부릅니다). 보통사람들은 대개 어느곳에 정착하면 이렇게 가정의 (주치의) 를 결정하고 우선 가족이 전부 의료기록을 들고 갑니다. 상담도 하고 얼굴도 익히고 하는거지요. 가정의는 그 가족의 모든 의료기록을 보관하고 새로운 의료기록 history도 쌓아갑니다. 대부분의 의료문제는 먼저 가정의를 찾아가고 (보험상으로도 그렇게 되어있지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약을 처방하고 보다 자세한 처방이 필요하면 적당한 전문의에게 의료기록과 함께 넘기게 됩니다. 전문의는 상담후 또 도든 기록을 가정의에게 다시 보내고 적당한 진료를 시작하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가정의의 클리닉에는 그다지 멋들어진 기계도 심지어 X-ray시설도 없답니다.
보통 사람들과 이야기할때 무심코 "어제 배가 아파서 병원 (hospital) 에 갔는데....." 하면 토끼눈을 하고 봅니다. 바로 hospital이라는 말때문입니다. 사실은 의사에게 상담하러 간거였는데, 버릇처럼 병원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Dotor's office 라고 해야 맞는 말입니다. Hospital이란 2차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비교적 큰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가정의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의료기록이 한곳으로 모인다는 것에 있는것 같고, 비교적 빨리 문제점을 찾아 2차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에 있을것 같네요. 몸이 안좋아 종합병원을 찾아 두세시간을 기다리고 2-3분동안 의사 얼굴보고 나오는 한국의 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가정의를 방문하면 의사와의 면담시간이 무척이나 길어집니다. 한사람당 충분한 상담을 하고 문제를 찾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수 있고, 심지어 수다를 떱니다. 대부분은 의사를 찾아간다는 딱딱한 의식보다는 그저 나를 잘아는 사람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의식정도로 찾아가는 듯합니다. 사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가정의는 되도록 아픈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자세가 역력합니다. 그래서 약간 아파서 갔지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검사를 하고 결과는 대개 전화로 통보하거나 전화로 물어봅니다. 다시 가서 초조히 기다릴 필요도 없고, 전문의도 마찬가지로 작은 사항은 대개 전화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신기하게도 의사의 전화를 받습니다. 증상은 어떤지, 필요한 것들은 없는지...... 주말이라도 핫라인은 항상 오픈하기 때문에 혼자된 불안감은 없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미국의료체계의 핵심인것 같습니다.
단점이요? 정말 많습니다.
아파서 예약을 잡으려면 일주일후에 오라고 하는 소리를 듣기는 예사입니다.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면 전화를 해주기도 합니다만, 정말 아프면 응급실로 가라 합니다. 또 특히 시골에서는 이런 경향이 정말 심한데, 예약을 하고 가도 2시간을 기다린적도 있네요. 바로 가정의를 붙잡고 온갖 이야기를 다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입니다. 의사는 다른 환자가 기다리는 걸 알지만 말을 걸고 상담하는 이를 외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화는 나겠지만, 그게 의사의 일이라서 그러려니 합니다. 또, 한가지의 결정을 하려면 시간이 무척이나 걸립니다. 예를 들어 배가 이상하게 아파 내시경이나 혹은 다른 부위의 MRI촬영을 해보고 싶어도 보험회사에 pre-approval을 넣고 승인이 나오길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어떤 증상에 대해서 빠른 대응이 힘듭니다. 바로 이런 부분들때문에 처음 미국에 오신분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미국의료의 후진성을 질타하지요. 뭐든 한번에 착착 빨리 대응하는 한국의료의 혜택을 받다가 맞닥뜨리는 미국의 현실은 정말 짜증이 날만도 합니다. 감기걸려 의사에게 가면 물먹고 약국에서 처방전없이 파는 타이레놀을 먹고 열을 내리라고 합니다. 그 흔한 주사는 절대 놓아주지 않습니다 (뭐 감기에 약이 없는건 다 아시죠?). 항생제를 넣어 독한 약을 처방해주는 것도 없습니다. 부적절하기 때문이지요. 드문경우지만, 가정의를 여럿 등록해두고 각각의 가정의에게 온갖핑계로 간한 진통제를 많이 타와서 약에 취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험이 있다면 보험회사에서 제지를 하지만, 무보험이라면 막을길은 없다네요.
여기서 다시 생각을 해봅니다. 미국의료는 선진적일까요? 선진이라는 의미를 단순히 기계의 선진화, 결정의 빠름등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미국은 후진적이겠지요. 그레이아나토미는 정말 큰 대도시의 특수한 경우일뿐이고, 작은 소도시의 경우는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물론, 응급실의 경우는 예외지만요). 하지만, 의료의 기본적인 정신을 따진다면 미국의 의료는 충분히 발달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환자의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케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그런 부분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든 의사들은 최선을 다하여 환자의 목숨을 살리려 노력합니다 그런 부분에 의문을 품지는 않지만, 의사들의 자세가 환자를 하나의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인간이으로 보는게 아니라, 고쳐서 내보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의료체계의 부적절함이 그런 사고를 부채질 하는건지도 모릅니다. 앞에도 이야기한 조금만 아파도 "종합병원" 대합실에 몇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의식도 한몫을 하겠지요. 쉽게말해 미국의 의료는 예방의학에 중점을 두는것 같고, 병원걸음이 힘들수 밖에 없는 한국에서는 병을 묵혔다가 크게 키우는 부분도 있는것 같네요.
보험문제도 앞에 이야기한 마이클무어의 씩코에서 통렬히 비판한바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 혹은 유럽의 보험제도가 그 대안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네요. 큰병일수록 더욱 보험의 의미가 살아야 함에도 감기만을 전담하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그리고 비보험이 너무 많아 판단은 빠르게 할수 있으나 과잉진료시비가 끊이지 않는 한국의 국민보험제도가 더 낫다고는 말하지 못해겠습니다. 사회보장의 극을 보여준다며 칭송하는, 국가에서 의료비용을 전담하는 사회복지 왕국들의 의료도 몇달씩 기다려야 수술차례가 돌아올만큼 균등속의 비균등도 그다지 추천할 대안은 아닌듯 싶네요. 보험이 없으면 작은 상처도 손가락을 절단해야 할만큼 병원이 멀고먼 이나라의 상황을 생각해볼때 그나마 혜택을 받게 하는것이 맞다는 생각도 해보긴 하지만.....
어느 쪽이 좋다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익숙해진 지금은 미국의 의료체계라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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