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세요. 저는 되도록 과학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과학이라는 말 자체는 너무 광범위하지만, 우선 제가 몸담고 있는 의생명과학이라는 분야에도 수많은 갈래가 있죠. 과학 이야기를 꺼리는 이유중의 하나는 되도록 블로그에서만은 저 자신의 일로서가 아닌 자연인으로서만 활동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과 (좀 지긋지긋하기도 하구요), 이런 과학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제가 추구하는 아이돌 가수(?) 의 이미지와 상치되기 때문입니다. ㅎㅎ
하지만, 사실상 더욱 큰 이유는 바로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무섭다함은.....
수년전 있었던 줄기세포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를 목도한 한사람의 순수과학자로서 그 어떤 과학의 성과나 부도덕한 논리도 저렇게까지 경제논리로 해체되어 정당화 될 수 있구나 하는 섬찟함과, 과학은 universal한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일거에 깨버린 광기의 민족주의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지요. 또한, 광우병사태로 인하여 비상식이 과학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도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한 혼란과 분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더군요. 섣불리라도 개인으로서 이런 논란에 뛰어드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겠구나 하는 공포심이 들었네요.. 전 간이 콩알 만한 사람이라서 과학구국결사대 (?) 같은 분들의 협박같은게 오면 못 견딜게 뻔하거든요. ㅠㅠ
암튼, 좀 그런 생각들이 혼재하여 많이 망설이고 망설인 부분이 바로 과학이야기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다 하시겠지요.
흠 흠 흠!! 암튼, 솔직히 전 집에만 오면 모든 걸 잊으려 애씁니다. 큰 실험이 있기 전날에는 자기 전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버릇이 있지만, 요즘은 그것도 되도록 안하려 노력합니다. 집에서마저 그렇게 하면 돌아버립니다. 블로그에 사실 과학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는 것은 미친 짓이라 생각합니다. 그리 관심을 끌만큼 일반적인 문체로 글을 쓸 재간도 그다지 없을뿐더러 특정 분야에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이 보면 물어뜯으려 달려들어 만신창이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죠. 박사란, 사실 아주 좁게 하지만 깊게만 아는 사람이라서 많은 분야를 커버하는 것은 위험하거든요. 거기에 민감한 소재를 이야기하면 좀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읽지도 않고 악의적인 댓글로 상처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의 X박사님을...." 뭐 이러면서요.
개인적으로 일상에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위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굳이 꺼내어 놓으려는 이유는 그래도 잘하면 비교적 평이하게 쓴 과학 이야기를, 관심 있게 읽어준 몇 분에게 만이라도 그에 대한 이해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데, 과학자란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답니다. 태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훈련되어지고 그렇게 자신을 바꾸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어들이 실생활 용어와 다르고, 그렇게 좀 있는 체해야 먹어 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농담입니다 ㅎㅎㅎ). 쉽게 풀어쓴 용어를 들으면 순간 당황하는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포가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은 '세포증식에 최적조건을 유지하여 주는...' 등으로 말하고 쓰기를 반복하다 보면 사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죠.
또 분명한 이야기를 흐릿하게 이야기하는 재주도 배양합니다. 보통은 반대로 아시겠지만.... 예를 들어 잘 모르는 이야기를 풀어서 명쾌한 논리로 해석해 이야기해 주는 것은 과학을 비즈니스 모델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나 아주 잘 훈련받은 연사의 이야기랍니다. 과학하는 사람은 되도록 면피를 먼저 내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방법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던 치매의 새로운 치료법이 될 것이다" 가 아니라 "보다 깊은 수준에서의 연구가 따라준다면 현실적으로는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진행성 치매의 치료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줄 것으로 믿는다" 라고 마감합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애매하죠. 다 면피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발표를 하지만, 결코 금방 이루어지지는 않음을 알거나 혹은 다른 문제점들이 분명히 있어 현재로서는 결코 장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돈이 될 연구는 쉬쉬하며 한답니다. 결코 논문 따위 (따위??? 이걸 위해 목숨 거는건데...) 에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뉴스 데스크나 9시 뉴스에서는 세계적인 과학적성과가 한국인의 손에 의하여 발표되었음을 한달에도 몇 번씩 이야기합니다. 제가 본 것만으로도, 한국인 과학자의 손에 의해 암도 정복하였고, 치매도 이겨 냈습니다. 지난번에는 비만의 원인이 한국인 과학자의 손에 의해 밝혀졌고 (?) 곧 비만문제도 해결된다고 하니 경사가 아닐수 없습니다. 보통 이런 기사가 나오면 후속보도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최소한 5년쯤 뒤엔 '저희가 5년전 보도해드린 암정복에 관한 연구가 결실을 맺어 신약으로 판매가 되었고, 곧 암은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이라 말하기 어려워 졌습니다. 지금까지 XX 뉴우스......." 뭐 이런 건 본적이 없네요. 이대로라면 저도 관절염을 정복한바 있고, B형 간염의 치료백신도 개발했거든요. 100보 양보하여 이런 보도를 그대로 믿는다 해도 인터뷰를 하는 전문가 분들의 말씀이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좀더 쉽게 이야기 해준다면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줄텐데. 하는 생각이 들죠.
여담입니다만.....아마도 당사자나 혹은 참고로 나와 인터뷰하시는 분들은 "...면에서 획기적인 연구결과입니다. 다만, 이를 토대로 신약의 개발에 이르기에는 후속연구가 선행이 되어야 하고 신약의 개발과 임상에의 적용까지는 적어도 10-15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같은 말들을 하셨으리라 봅니다. 과학자니까요. 그러나 방송에서는 방송시간문제도 있을테고, 무한도전도 방송해야 하기 때문에 뒷말은 짤라 버린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일반인의 뇌리에선 잊혀져가지만, 난치병으로 고생하시는 환우분들에게는 엄청난 뉴스거리와 희망이 됩니다. 대체 환우들에게 희망을 주어 뭐가 잘못이냐 할 수도 있으나... 희망고문이라고 하는 것이 있죠.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함께 적시하지 않으면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야 하는 환우와 그 가족, 또 큰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가 막상 그 실현 가능성이 턱없이 낮음에 대한 급격한 실망...... 이런 부분들은 뉴스프로그램에서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샜지만, 암튼 새로운 생명과학계의 소식들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으니 그런 부분들에 조금의 해설만 보강하면 보다 이해하기 쉬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담이었습니다.
암튼, 이 카테고리의 글들은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제가 간이 콩알만한 관계로 되도록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언급은 하나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신공을 발휘해가며 어려운 이야기를 되도록 쉽게 풀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ㅎ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들은 현업에 종사하시는 의사분들이나 다른 특정 전공분야의 분들이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의학박사라 하지만 전 의사가 아니어서 임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함께 하나의 주제로 쉽게 풀어가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지고 있네요.
또한 새로운 카테고리이지만, 그리 많은 이야기들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아무리 쉽게 풀어쓴다고 해도 그렇게 까지 쉬워지지는 않을수도 있답니다. 다만, 암이라거나 flu 백신같은 일반적이거나 시의적절한 주제들에 대하여 꾸준히 그러나 천천히 써보겠습니다.
이미 다른 커뮤니티에 게재한 과학칼럼들이 몇개 있어 오픈기념으로 올립니다. 심한 다작이라 오해는 말아주세요.
많은 관심 부탁 드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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