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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

나 살던 고향 - 정태춘 (covered by 빨간來福)



육만엥이란다
후꾸오까에서 비행기타고
전세버스 부산거쳐 순천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 나루 음
아이스박스들고 허리차는 고무장화 신고
은어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 사일 풀코스에 육만엥이란다

아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넝쿨 바라보며
립빠나 모노데스네 립빠나 모노데스네
깨스불에 은어 소금구이
혓바닥 사리살살 굴리면서
신칸센 왕복 기차값이면
조선관광 다 끝난단다 음 음
육만엥이란다
아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넝쿨 바라보며
립빠나 모노데스네 립빠나 모노데스네
낚싯대 접고 고무장화 벗고
순천의 특급호텔 사우나에 몸 풀면
긴 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써비스 한번 볼만한데 음 음
환갑내기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그저 아이스박스 가득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그 맑은 몸값이
육만엥이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나니나니나
(X돼 부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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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었다. 

이 곡이 수록된 92년 장마는 아! 대한민국과 함께 공륜의 심의를 거부하고 제작되었고 암거래하듯 팔리던 음반이었다. 그만큼 듣기 힘든 곡이었고, 대개 공연이 아니고는 일반적으로는 듣기 힘들었다. 곡들은 대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은 곡은 아! 대한민국, 황토강으로 혹은 떠나는 자의 서울 같은 무거운 주제의 곡들이었고.... 나중에 심의가 없어지고 복각되어 발매된 음반을 바로 사서 듣고는 철지난 격정에 몸을 떨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이 노래 "나 살던 고향"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난다. 몸도 못 움직이고 몇번을 반복하여 들어야 했던지.... 

연기없는 굴뚝이라는 관광산업 그 속에서도 졸부 일본인들의 돈을 긁어 내고자 위정자는 그당시 풋가시내들에게 관광역군이라는 허울과 질곡을 씌워 주었다. 그렇게 정부의 비호속에 소위 기생관광이라는 것이 판을 치고, 방방곡곡 일본인 현지처로 넘쳐나던 그 시절. 누구나 알면서도 쉽게 말하지 못하던 그때의 민초들의 울분을, 시인 곽재구는 유곡나루라는 시집에서 신간센 왕복값밖에 안되는 육만엔으로 한국인 처녀를 그리고 등푸른 섬진강을 유린하던 일인들의 위정자의 폐악을 이야기 하였고, 우리의 가객 정태춘은 곡을 붙혀 세상에 널리 알린다 (의도와는 달리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가장 왜색이 짙은 멜로디라는 뽕짝, 그것도 모자라 유랑극단 소야곡에나 등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뽕짝리듬을 차용하였으니 이런 장치들에서 더욱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마지막의 가사를 들으면 정말 소름이 끼칠만큼 대단한 풍자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정수라의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대한민국이 위정자들의 유토피아적 선전이라면 정태춘의 대한민국은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든 신출귀몰 백골단이 있는 현실의 대한민국이었던 것처럼 나의 살던 꽃피는 산골은 "X돼 부렀네" 라고 하는 고향일 뿐이었다 "실제로 공연때는 마지막 나니나니나 대신 X돼 부렀네를 그대로 노래했다고 한다).   

원곡에는 유랑극단의 상징 아코디언반주가 나오는데, 그 멜로디가 더욱 이 곡을 "뽕짝" 스럽고 착착 감기게 만들어 준다.

원곡을 한번 들어 보시길...


사실, 왜 요즘같은 시대에 이런 시대착오적인 곡을 다시 끄집어 내느냐 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렇게 조롱과 멸시의 섹스애니멀의 자리에 졸부한국의 얼굴이 비치니 이 곡은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음반에 굿거리 장단의 LA 스케치라는 곡도 명곡인데,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