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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기타교실

나의 기타 이야기 8 - 홍길동은 나무를 넘고 음치는 노래를 넘다

드디어, 드디어......

통기타 써클의 신입회원 모집 공고가 났습니다. 성호와 저는 공고를 보자마자 일찌감치 찾아갔습니다. 분명히 1학기에는 없던 써클이 생겨 참 신기하기도 해서 물었더니 원래 1980년에 생겼던 써클이 그 이후 없어 졌다가, 군대 갔다온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 1학기동안 재 창립준비를 하고 2학기에야 등록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고향에 찾아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배중에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마음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대학가요제를 목표로 하는 그런 써클은 아니었고, 알게 모르게 그런 외부활동을 경원하는 분위기이더군요. 건국대학교 건전가요회 (KUFA)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암튼 그러한 사정으로 중간 기수가 없이 우리보다 네 살 많은 82학번 형들이 주축이 되었고, 그 다음이 바로 우리기수였습니다. 대략 20명가량의 신입회원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무슨 오디션같은것도 없었고, 다들 노래 좀 못하면 어떠냐 이렇게 모여 함께 노래도 부르고 놀기도 하고 뭐 그러는 거지 하는...... 

그러나.....선배들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지요. 어디나 그렇듯, 다 그런건 아니지만, 엄청난 노래실력에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타,그리고 하모니... 학교에서 열린 방송국 주최 가요제 입상자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써클이었던 만큼 탄탄한 실력과 두터운 자작곡을 가지고 있던,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써클이었지요. 

(ㅋㅋㅋ 이럴리가 없죠. 1988년인데...그냥 오래된 사진처럼 만들어 보았네요)

저와 성호가 그동안 열심히 해대던 음악들이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선배들만 그렇게 실력이 있던 건 아니었네요. 학교안에는 우리처럼 음악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던 겁니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대학 1학년 동기들의 노래나 연주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한 여자 동기는 기타와 노래가 무척이나 능숙할 정도 였지요. 대개 여자아이들은 미용상의 이유로 (손끝이 무척 거칠어지므로) 기타를 잘 안하는데...... 남자동기들도 그랬습니다. 각자 기타는 개성이 있었고, 그냥 기타만 잡으면 대강 수시간은 노래할수 있는 그정도의 실력들을 갖추고 있더군요. 그중 발군의 실력을 갖춘 두 아이가 두드러졌네요. 한명은 악기는 못하는데 타고난 미성에 고음이라서 도저히 함께 부를 엄두가 나지 않는 아이였고 (나중에 옥슨의 보컬로 팔려갑니다), 다른 한 아이는 좀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였는데, 노래를 들어보고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까지 그 정도로 노래 잘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자신이 작곡한 곡이라며 여러곡을 들려주었는데 대개 중학교 2학년때 만든거라나 뭐라나...... 수준차이나게.... 음메 기죽어....... 그런데 가사 내용이 너무 어둡더군요. 거의 끝은 죽거나 하늘에서 어쩌구 하는 내용이었고, 이 친구 자체도 말이 없고 동기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2학년이 끝날때까지는 제대로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참 무던해지고 정말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땐 좀 많이 어두웠습니다. 그 친구는 김 영국이라는 친구였습니다. 써클에 들어오고 얼마 안있어, 발표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써클은 주로 자작곡위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선배들이 작곡한 곡들을 새롭게 익혀 발표회에 올리게 되었네요. 물론, 영국이란 친구는 자신의 노래를 들고..... 우이씨!! 도저히 따라하지 못할만큼의 대단한 음악 실력을 갖춘 선배가 그중 몇곡을 맡아 우리 신입회원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곡을 할당받아 열심히 연습을 하던중이었는데, 한참을 지도하던 그 형이 갑자기 절 보고는 “넌 아무래도 빠지는게 좋겠다” 하는거지 뭡니까. 뭐요? 나 잘하는중 아니었어요 하는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결국은 빠지게 되었답니다.    

물론, 밤에 잠도 오지 않을 만큼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하여 이젠 남한테 기죽지 않게 노래하게 되었다하며 음치탈출을 자축하던 저는 뭐란말입니까?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던 마음에 순식간에 지난날의 악몽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써클을 그만 두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오랜생각끝에 그냥 자존심 누르고 눌러 앉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그 발표회에서 전 스텝을 하게 되었습니다. 발표회중 조명이나 음향 조작, 그전에 그 모든 것을 빌려와야하는 일까지 남들 노래 연습할 동안 해야 했습니다. 아! 역시 난 노래는 안되나 보다 라는 자책감이 몰려 와서, 연극무대를 올리는 사람은 배우가 아니라 뒤에서 일하는 스텝들이다 라는 애써 자위를 하며 오히려 발표회 준비를 더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제 덕분에 (?) ㅋㅋㅋ 무사히 발표회가 끝나고 나니, 많은 아이들이 써클을 떠나버리더군요. 사실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다 끝이나면 허무함이 밀려오기 마련이고, 그럴때마다 뭉텅뭉텅 사람들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텅빈무대 증후군같은..... 그때 뿐이 아니라 그런일은 그 뒤로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암튼,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 오기가 났습니다. 그땐 새벽마다 일본어 학원에 다닐때 였습니다. 어차피 수업은 없었고, 학교가 조금 매캐하긴 했지만, 학원 끝나고 학교에 와서 독하게 노래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또 한놈만 팼습니다. 물론, 연습하다 짤린 곡. ㅠㅠ 

옛날 이야기를 보면 우리의 홍길동이 뒷마당에 작은 나무를 심어 놓고 그 나무를 폴짝폴짝 넘는 연습을 하는게 나옵니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우리의 길동이는  자기 키보다 큰 나무를 수월히 넘습니다. 니무의 키는커갔지만, 자기가 늘 넘던 나무라서 항상 넘을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할거라는 그런 옛날 이야기입니다. 타고난 몹쓸 수퍼맨은 
그런거 안해도 다 잘 넘는데, 타고
난 것이 그리 마땅치 않았던 착한 길동이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을겁니다. 뭐 안타깝지만 착한 길동이였던 (?) 저도 그렇게 하기로 했지요. 한곡을 가장 크게 우렁차게 열심히 연습하고, 익숙해지면 조금씩 조금씩 올려가기로 하였네요, 목이 트이는 그날까지. 원래 이런건 폭포 밑에서 해야 득음을 하는 법인데 아무리 수업은 없었다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는 일은 아니어서..... (다행이죠?) 

원래 전 오래 뚝심있게 하는 건 자신이 있었습니다. 뭐 거의 중학 3년간 년간 세곡으로 버틴 전력도 있고....이렇게 아무도 없는 아침 써클룸에서 오직 한곡을 파기를 한 4-5개월 했습니다. 방학동안에도 내내 했으니 참 무던하게도 연습한것 같습니다. 어찌나 춥던지...... 그런데, 그렇게 해도 사실 그렇게까지 휙휙 진전이 안되더군요. 그런데, 목에서 피를 두어사발 (거짓말 입니다. 그럴리가 없잖아요 ㅋㅋㅋㅋ) 오랫동안 별 진전이 없더니 봄이 다가올 무렵 점점 목이 틔여가는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우리의 길동이에게 감사했습니다. ㅎㅎㅎㅎ 

우선 목소리를 크게 내고 정확한 발성을 하는 것부터 해야 목소리를 작게 낼수 있더군요. 원래대로 작고 고운 목소리로 연습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무조건 음을 높게 잡는다고 좋은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는걸 깨달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음역이 있지요. 낮은음을 내는 사람이 첫음을 높게 잡고 버벅거리면 그 사람은 음치가 되는것이고, 높은 노래도 자신의 음정에 맞게 분위기 있게 부르면 잘하는 노래가 되는거지요. 이 모든것이 다 큰 소리로 자신있게 노래를 연습할때 조절 가능한 것이랍니다. 

이무렵부터 들은 풍월로 복식호흡이라는 걸 하기시작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때는 복식호흡을 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흉식호흡을 하게 되게 되지요. 가만히 누워 숨을 쉬고 있을때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것이 흉식입니다. 반면,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것이 복식호흡이지요. 단전호흡과는 다른.... 암튼, 의식적으로 하루에 20-30분씩 이렇게 가만히 호흡만 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코로 들어온 숨을 의식적으로 배로 밀어넣습니다. 하나의 호흡을 상당히 천천히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와 식도는 엄연히 다르지만, 들어온 숨을 배로 보낼수는 있답니다. 암튼, 이런 식의 호흡법은 숨을 길게 해주고, 음을 안정적으로 해주는데 커다란 도움을 줍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복식호흡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복식이 되도록 되었네요. 자는중에도 배만 왔다갔다 합니다. 배가 많이 나온 요즘은 좀 엽기랍니다. 누워서 TV를 보고 있으면 배가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화면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는...ㅋㅋㅋ 

정말 그 4-5개월의 시간은 그간 쌓아왔던 일갑자의 내공을 모두 쏟아 부은 시간이었습니다.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무엇이든 이렇게 간절히, 열심히 하면 이루어진다는 (쓸데없는) 교훈을 얻게된 시간이기도 하답니다. 이렇게 제가 얻고자 하는 음을 얻고 부터는 정말 인생이 달라질뻔 하였지요. 

물론, 그동안도 써클내에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수업이 거의 없으니....). 열심한 써클생활이란 비는 시간 (하루종일) 에 써클에 출근, 하루종일 노래와 기카 그리고 쓸데없는 농담으로 버티다가 어스름해지며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될 무렵이 되면 슬쩍 나와서 (회색분자) 막걸리와 소주로 인생을 논하는 그런 활동을 말합니다. 물론, 아무리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다음날 새벽 4시반쯤이면 일어나 새벽전철을 타고 종로로 일본어를 공부하러 다녔습니다. 제 목표가 있었기때문이지요. 그렇게 열심히 (?) 생활을 하다가  2학년이 되었고, 써클에 들어온지 6개월만에 신입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주 아주 열심이었던 써클생활로 인하여, 그 전 겨울에 차기 써클회장에 선출되어 있었지요. 멋지죠? 

하지만.....ㅠㅠ 원래 그런데서는 노래 잘하는 순서가 아니라 쉽게 생긴 순서대로 되게 되어있답니다. 술잘마시고, 집에 잘 안들어가도 그리 큰 문제가 안생기는 뭐 그런.....  노래 잘하는 우리의 영국이는 그런거 안합니다. 선수보호차원이라고 보면 되시겠습니다. 누구도 안하려고 했구요. ㅎㅎㅎ

신입생을 받고 조금 적응이 된 후에 (그때 저의 아내를 만납니다. 무슨 운명처럼 이야기 하였으나 그냥 후배였지요 ㅋㅋ), 발표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집행부인 2학년이 핏덩어리 1학년 신입생을 데리고 (기껏해야 써클경험 6개월 앞섰다는 이유만으로...) 노래지도를 하고, 연습을 시켜 함게 무대에 오르는 식이었지요. 드디어 기회는 왔습니다. ㅎㅎㅎ 동기 여러명이 곡을 나누어 신입생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전 회장이었습니다. 물론, 조금의 토의는 거치지만 전 재빨리 곡들을 분배하고 하나 남은 곡은 얍삽하게 제가 차지해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 아는 노래, 4-5개월을 매일같이 연습한 그 통한의 곡이지요. 물론, 전 한명도 빼지 않고 끝까지 다 데리고 갔습니다. 푸하하 

발표회의 주제는 현대 한국포크음악의 발자취를 찾아서 뭐 대충 이런거였습니다. 준비기간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또 제가 부덕한 관계로 동기들과 불화가 생겨버렸습니다. 잘 해보려는 의욕에 독주를 해버린거지요. 누구든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상황을 불편해 합니다. 잘해보려는 과욕과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에 발표회에 관련된 모든 걸 (포스터, 팜플렛, 곡목선정, 주제 등등,......) 혼자서 챙기려 들었더니, 동기들이 외면을 해버리더군요. 자ㅓ도 어렸고, 친구들도 어렸습니다. 그땐 정말 힘이 들었네요. 

드라마나 영화 보면 왜 그런 거 나오잖아요. 인간적으로 균열이 가서 복구가 안 될 것처럼 보이다가, 주인공이 "그래 다 내 잘못이다" 하며 무릎을 떨구고 오열을 하면 주위사람들이 감동먹고 "아니야! 혼자서 잘못한다는 건 말도 안된다. 우리 이제 잘해보자" 어쩌구 함께 부둥켜 안고 울면 상황끝! 하는거...... 뭐 꼭 그런건 아니었지만, ㅋㅋㅋ 결국 발표회 며칠을 남겨두고 일단 사태는 수습이 되어 발표회를 무사히 마칠수 있었지요. 영화와 현실은 다른법이었습니다. 그렇게 금이 간 동기들과의 사이는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봉합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세월의 파도에 무디어 진 것이고, 나이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전보다 더 친해지게 되었지만.....그땐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인생은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사는게 아니다라는 상당히 실용적인 교훈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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