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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기타교실

나의 기타 이야기 7 - 무대공포증을 없애라

우선은 무대공포증을 없애려 일부러 청중을 대상으로 노래하고  연주했습니다. 그 당시 재미있는것은 수업은 안해도 엠티나 종강파티는 꼭 했답니다. 동급생인데 얼굴도 모르면 안되니까...... 그때는 거의 우리의 독무대였지요. 

그 당시 가장 인기있던 그룹은 해바라기였습니다. 우린 해바라기의 모든 노래들을 해체하다시피 했지요. 악보를 구하고, 그도 안되면 수없이 듣고 전주 간주의 애드립을 배우고 노래를 연습했습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우린 콘서트장에 노트를 들고 갔습니다. 대개 그들의 콘서트는 작은 무대가 많아서 비교적 용이하게 앞으로 파고들수 있었지요. 어떤때는 너무 작은 무대라서 무대위에 올라갈때도 있었네요. 



종로 1가에 인기 DJ 박원웅씨가 경영하던 무어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에 해바라기가 고정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출근하다시피 했지요. 일찌감치가서 앞자리에 않아 또 노트를 듣고 코드를 훔쳐 적고, 애드립의 운지법을 눈여겨 보며 배웠습니다. 참 열성적으로 그랬던것 같네요. 그 당시에는 대학생으로서는 커다란 지출이었던 맥주를 두어병 시키고, 한시간쯤 그렇게 황홀함에 젖어있다가 세고비아 기타가 있던 곳까지 걸어내려와 뒷골목에 있던 허름한 국수집을 찾아가 200원짜리 멸치국물 국수를 먹고 집에 가곤 했습니다. 

또 김민기나 당시에 유행하던 혹은 전에 유행하던 노래들을 새롭게 불러보는 것도 참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한학기를 하고나니 제가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노래가 늘었습니다. 음치 탈출이었을까요? ㅋㅋㅋ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시켜줘야 하죠) 매일 하는짓이 기타나 치고, 노래나 하니 뭐 한량이 따로없었네요. 풍류를 아는 룸펜정도......

또 다른 추억은......가라오께나 노래방이 없던 그 시절은 어딘때에도 그 비슷한 건 있었습니다. 종로 관철동 뒷골목에 가면 (종로 서적 뒷편 두어블럭 더 들어가면) 작은 간판의 <코러스-합창의 집> 이라는 곳이 있었지요. 들어가며 입장료를 내면 신발주머니를 하나씩 주고, 또 두툼한 노래책 한권씩을 나누어 줍니다. 또 차도 시켜야하지만, 어쨌든 젊은 사람들이 꽉차있었습니다. 요즘은 다들 가수만큼 노래를 잘하고, 노래방이다 뭐다해서 자신의 노래솜씨를 갈고닦을 기회가 많습니다만, 그때는 정말 누구 앞에서 노래한다는 건 그리 일반적이지 않을때였습니다. 기껏해야 교회에서 성가를 하거나, 막걸리잔 앞에 놓고 "영자~~~야 내 딸년아~~~" 하던게 대부분이었네요. 암튼, 앞의 무대에는 두툼한 안경을 낀 아저씨가 두단짜리 신디사이저를 놓고 노래책에서 한곡씩 골라 번호를 알려주고 싱얼롱을 합니다. 노래 중간중간에 객적은 농담도 한마디씩 하고 연인인듯 싶은 까플이 있으면 앞에 불러내어 데리고 놀다가 상품도 주고 뭐 대충 그런 형태로 운영되던 정말 합창의 집이었습니다. 요즘 그런곳이 있으면 아마 한달도 버티기 힘든 그런 곳이지만, 그땐 제법 입소문을 타고 늘 붐벼서 일찌감치가야 자리하나라도 차지하던 인기장소였지요. 물론, 그것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거의 유일하게 목청껏 노래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 아니다, 또 있었네요. 그중요한걸 빠뜨릴뻔했군요. 스텐드빠에 가면 건반과 기타하나로 이루어진 밴드가 반주를 해주긴 했습니다. 어쨌든 그곳에서 우리는 안 시켜도 손들고 나가서 새로 연습한 곡을 함께 용감하게 부르기도 했고, 이제 그만 오라고 할 때까지 갔습니다 (치사하게). 또 한국일보사 앞의 자그마한 사과나무라는 카페도 기억이 나네요. 의자도 몇개 없는 작은 카페였고, 무데도 없었지만 손님들은 비교적 단골스러운 모습으로 앉아있던 곳이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노래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노래를 하고 있으면 일단 여기저기에서 맥주한병씩이 배달되어옵니다. 일종의 팁같은것이었는데, 어떨때는 취해서 나오기도 했지요. 그런것이 다 한마디로 무대 공포증을 걷어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열정이었답니다. 조금 운치있다 싶은 교외의 명소는 다 가보았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대개 기타가 놓여있었고, 누구나 노래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지만, 왠만해선 덤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개는 연인끼리 오는 경우가 많고 멋모르고 애인앞에서 기타잡고 잘난체하다가,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호의 고수가 뒷전에서 나와 슬그머니 노래를 시작하면 개망신을 당한다는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사실은 누구도 섣불리 나서질 않는 법이랍니다. 무서울게 없던 우리는 그런곳에 가면 꼭 노래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사실 그때쯤에는 실생활중에 우리보다 기타솜씨가 뛰어난 사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은 실정이었네요.  그런곳에서 노래를 할땐 일종의 요령이 필요합니다. 한쪽에는 모닥불이 피워있고, 작은 무대도 있고, 또 한쪽엔 호수가 보이고...뭐 그런곳에선 사람들이 조금은 낭만적이 되어있기에 작은 실수 같은건 거의 개의치 않습니다. 다들 연인과 손붙잡고 쿵짝짝 하기 바빠서리....일단 그런곳에서 쓸 레파토리를 미리 정리해두어야 합니다. 먼저, 가장 자신있고 연주가 제법 고난도인 노래들, 예를들면 정태춘의 노래들 (서해에서, 시인의 마을 등등....) 을 맨 앞에 배치하여 노래와 연주를 시작하면 일단 급먹어줍니다. 우선 첫곡을 그렇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유도하면...... 우선 다들 이 사람은 상당히 잘한다 라는 인식을 갖게 되지요. 그 다음은 사실 조금 못한다 해도 처음 한두곡에 다 넘어갔기 때문에 대충 엄청 잘 하는 것으로 여기게 마련입니다. 일종의 사기라면 사기고, 요령이라면 요령이고.... ㅋㅋㅋㅋㅋ.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또 제법 활발해 보이는 아가씨한테 노래를 시키기도 하고, 연인에게는 연인의 노래 반주를 해주고 하며, 또 유난히 노래 못했던 사람뒤에 슬쩍 노래를 끼워넣고, 하다보면 자연스레 친해져 술잔을 기울이게 되기도 하고, 연락하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합니다 (미리 밝혀두지만, 결단코 이성에게 작업한건 아니랍니다. 그냥 싫다는데도 자꾸......애구 무슨 이야기를....)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은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도장 격파에 나서고 쇠뿔을 꺽었다지요. 저도 제 안에 있는 예전의 자신을 격파하는 작업을 하고 있던 것이었지요. 매일매일 수십리 떨어진 시내에서 물만 길어와가지고는 기초체력은 길러질지라도 무술에 능해지지는 않습니다. 또 줄넘기하고 샌드백만 두드린다고 권투에 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엎어지고, 두드려도 맞고, 상대와 맞닥뜨려 공포심도 경험하고 해야 비로소 한명의 파이터가 탄생하는 것이랍니다. 

그렇게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 사이 남앞에서 노래하는 걸 무척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고 노래는 정말 많이 늘게 되었습니다. 성호와 그간 연습했던 노래들을 모아 아는 형이 운영하던 카페에서 작은 콘서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돈을 받고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친구들이 찾아주어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지요. 별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이 뿌듯하고, 그렇게 노래할동안은 꼭 얼마전 보았던 맥주홀의 이문세나 양희은이 된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네요.   

2학기가 되어 수업을 일주일쯤 하기도 했는데, 또 다른 이슈로 수업거부에 들어가는 나날이 반복되었습니다. 솔직히 수업안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그저 하리없는 행인이 되어가는 것도 정말 지치는 일이지요. 학생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니고, 학생운동을 할만큼의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아가기에는 마음속에 가진 목표는 컸지요. 그런 상황을 원망만 하며 그저 세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던 어느날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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