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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미국이야기

미국 깡촌 생존기 7 - 가족생활이 쉽다고?

막상 미국 시골마을 생활을 시작하니 예상치 않았던 장벽들이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언어의 장벽이야 각오한 일이었고, 먹고사는 문제는 차차 해결해나가면 될것이고..... 가장 힘겨웠던 장벽은 오히려 안에서 생기네요.

학생신분이었던 일본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연구실로 출근, 하루종일 실험과 데이터 정리 그리고 이어지는 토론 등등에 하루를 어찌 보내는지도 모르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집에는 거의 12시경의 마지막 전철을 타고 오게 되고,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으면 1시가 훌쩍 넘어 다시 잠깐 자고 아침이면 다시 같은 생활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반복했기 때문에 가족생활이라고는 지친몸에 겨운 몸을 일으키는 일요일 오후쯤부터 시작되곤 하였네요. 그것도 반쯤 졸면서.....이런 깡촌까지 오게 된 것도 그런 일본생활에 심신 모두 지친 우리에게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서였으니, 이제부터는 멋진 가족생활을 하리라는 엄청난 다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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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어려웠습니다. 뭘 어떻게 하는 게 가족생활인지 도대체 알도리가 없더군요. 우선 연구소는 저녁 5시만 지나면 대개 퇴근하는 분위기였고 (절대로 미국의 연구소나 학교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5시에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인 경우가 많네요. 띄엄띄엄 못다 끝낸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만, 대다수는 바로 퇴근을 합니다. 이래서 되나 어쩌구 하면서도 처음이라 할 일도 없고 하여 집으로 오는데, 집이 바로 연구소 앞이더라는..... 걸어서 1분 남짓..... 집앞에는 집사람과 아장아장 걷는 딸아이가 나와 있습니다. 무언가 기대에 찬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데.... 어쩌라고 저러는거지? 하는 당황스러움만이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다시 돌아 갈까? 하는 마음도 들고...... "그럼.... 어.... 산보갈까?" 뭐 이렇게 되어 10여미터 떨어진 뒷산으로 산보를 갑니다. 어색함을 지우려 열심히 이야기도 해보고 하며 야트막한 산을 두루 걷다가 집에 와서는 밥도 먹고 하는데 어찌나 서먹서먹하던지.... 암튼, 그렇게 부산하게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TV도 켰다 껐다 불안하게 여기저기 왔다갔다.... 해도 지고 아이도 씻겨 재우고 차도 한잔 마시고 정말 많은 일을 했네 하고 시계를 보면........... 밤 9시가 안되더라는...... 살려줘!!!!

이거 매일 이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더군요.

그래~~~서 시작한게 바로 고스톱, 전문용어루다가 맞고라고 합니다. 둘이서 하는 화투. 화투는 일본에서 한 장에 장판두께되는 닌텐도 화투를 구입하여 가지고 있었기에.... 뭐 부부사이에 돈내기도 그렇고 하여 주로 마빡치기, 맥주병따기 등등 신체고문 고스톱을 했네요. 다음날 아침에 마빡에 밤톨이 몇 개 선물받고 "오늘 밤에 두고봐. 디졌어" 뭐 이랬지요. ㅋㅋㅋㅋ

사실, 그런 비교적 건전한 (?) 것만 한건 아니고.... 전부터 유명한 주당들이었던 우리는 어느 날... 이곳에서는 와인이 무척이나 싸다는, 절대 알면 안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가 양주라 부르며 가까이 하기를 거부하곤 하던 hard liquor 들이 즐비하다는 사실. 젊기도 했고, 한 번에 한 병씩 까대다가는 양이 안차서리 2리터쯤 되는 커다란 와인병에 도전, 그 다음날 장렬히 전사하였던 일도 있었네요.

주말은 또 왜 그리 길던지..... 왜 여긴 주말을 이틀이나 쉬는걸까 하는 불만 (?) 이 들 정도였고, 장소를 정하지 않고 무조건 차를 끌고 나가 사진을 찍어댑니다. 어디랄것도 없이 셔터만 누르면 그림이 되는 그곳이었기에 정말 주말마다 나가게 되더군요.

시간이 지나고 조금 날씨가 풀리면서 보니 퇴근 후, 사람들은 연구소 private beach에서 가족을 만나 거기서 저녁도 먹고 아이들을 놀리고 합니다. Private beach 들어는 보셨습니까? 우선 beach란 간단히 모래사장을 의미하므로 그게 해변이든 호변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사실 거창하지만, gate가 있는 곳에 아주 자그마한 모래사장이 수줍게 있습니다. 연구소 소유의 땅안에 있으므로 외인은 출입금지랍니다. 물론, 다른 public beach도 있으나 연구소사람들은 이걸 커다란 혜택으로 알고 맘껏 즐깁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커다란 피크닉 가방에 샌드위치 싸들고, 맥주 채워서 모이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래사장에서 뛰어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수다와 음주 등등에 바빠서 어둑어둑 해질때까지 있곤 했습니다. 

(from Google Map)

문제는 그럴 수 있는 기간이 무척 짧다는 거..... 그런 찬란한 여름에서 아주 조금만 지나면 바람 불고 추워져서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됩니다.

우리와 거의 같은 시기에 멕시코에서 가족과 함께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딸의 나이도 지수보다는 두 살이 위였고, 같은 office를 나누어 쓰던 사이여서 무척이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네요. 영어수준도 저와 비슷하고 나이도 같고 하니 더욱 그러했습니다. 멕시코시티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니 추운곳이 그리 익숙치 않은 친구였고, 나름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온 친구라서 기나긴 겨울을 못 견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과 사교모임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갖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정한건 아니었지만, 토요일에 서로의 집에 초대하여 서로의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놀다 보니 그렇게 정기적이 된 거지요. 아이들이 함께 놀고, 어른들은 카드게임, 도미노게임 같은 건전 게임을 합니다. 물론, 소주도 등장하고 데낄라나 맥주가 등장합니다. 잡채에 감탄하다가 정통타코에 열광하지요. 그 친구들도 우리도 서로의 나라와 문화에 무지하였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친교를 유지하는 동안 많은 것들을 배울수 있었지요. 1-2분 걸으면 되는 거리에 살았기 때문에 운전 부담이 없으니 마음껏 들이 부었죠. 그러니 서로 2주일에 한 번씩 잔치요리를 하게 되고, 그렇게 밤늦게까지 노는 것으로 다시 일주일을 버틸 힘을 얻곤 하였습니다. 불끈!!

시간이 지나니 점점 이런 가족생활에 익숙 (?) 해져 갔고, "에이, 주말은 왜 이리 짧은거야" 하는 경지에 까지 가더군요. 처음 인터뷰를 하러 왔을 때,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가족생활에는 정말 좋은 곳이다 라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던 거죠.

우리는 이렇게 위기를 (?) 넘겼지만 (뭔소리인지...), 기나긴 겨울, 주위 사람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몇몇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알코올 의존도가 점점 커지며, 급기야는 도시를 찾아 떠나가는 일이 매년 반복됩니다. 연구소에 전해지는 말로 "봄에 온 사람들은 오래 버티지만, 가을에 온 사람들은 오래 못 버틴다"는 말이 있습니다. 봄에 오게 되면, 조금 있으면 찾아오는 찬란한 여름을 만끽하며 다른 사람과 만나기도 하고 그 즐거움을 알게 되지만, 가을에 처음 온 사람은 오자마자 내리는 눈에 겨우내 틀어박혀 외로움을 몸서리치게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라지요. 그 말은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니 봄에 와서 그해 여름을 만끽하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겨우내 술퍼마셨던 (?) 우리는 그 다음해에는 거의 small town 전문가가 되어 있었으니 운이 좋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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