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 미국이야기

미국 깡촌 생존기 10 - 이러다 한국말을 못하는 거 아니야?


1살까지 일본에서 살며 일본의 유아원에 다니던 지수는 한국말도 일본말도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미국에 오게 된것이지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너무 어린나이에 세가지의 언어와 문화가 충돌하게 된것입니다. 1살이라면 가장 활발하게 부모와 주위의 일을 흉내내며 아장아장 걷던 시절이어서 많이 걱정을 한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도시에서만 자라던 아이라서 잔디밭에 발을 들여 놓기를 겁내하더군요. 옆집아이들이 나무에 매달려 오르고 뛰어내리고 하는 것을 보기만 하며 좀처럼 잔디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한참후에는 함께 뛰어 놀게 되었지만, 그것이 지수가 겪은 첫 문화충돌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커가며 예상은 했던 어려움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바로 언어의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반복해서 듣기와 흉내내기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집요하게 "엄마, 아빠, 맘마" 를 외치는 부모가 있기때문에 대개는 이중 한단어를 먼저 말하게 되고, 뛸듯이 기뻐하기도하고 맘마를 엄마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을 익히게 되고 점점 문리가 트이며 새로운 단어를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흉내를 내게 되지요. 부모가 아이의 거울인것도 이런 이치라 할수 있겠습니다. 비교적 그 흉내대상이 부모에 한정이 되면 부모의 언어습관을 그대로 배우게 되는 법이지요. 하지만, 부모만으로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거리에 나가도 할아버지댁에 놀러가도 늘 들려오는 언어는 비슷합니다. 그러다 의식도 하기전부터 벽에 붙어 있던 가나다라 표와 비슷한 글자가 거리의 간판에도 있음을 발견하기도 할겁니다. 언어란 반복과 흉내이고, 어디에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몸으로 익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수에게는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부모밖에는 없습니다. 문밖에만 나가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뿐이고, 집에서 간혹 보던 글자는 밖에서 보는 글자와는 다릅니다. 그래도 집에서 엄마와 있을때는 좀 나은 편이었지만, 엄마가 일을 시작하고 보육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엄마나 아빠보다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하는 영어를 더 많이 들어야 했지요. 그래서단어가 아닌 한국말 문장보다는 영어문장을 먼저 말하기 시작했던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개 외국에 살게되는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는것 같습니다. 영어를 예로 들면 우선은 영어만을 말하려 합니다. 지수의 경우는 한국말을 잘 배우지 못하여 더욱 그랬던 것 같네요. 한국말을 비교적 잘 알아듣지만, 영어로 대답을 합니다. 부모가 영어를 하면 그래도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 싯점에서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것 같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영어로 말하길 고집해도 꼭 한국말로 고쳐이야기 하는 버릇을 들이지 않으면 바로 모국어를 잃을 위험이 있더군요. 아무리 부모가 영어를 잘한다 하여도 아기때부터 배운 아이와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기는 그리 쉽지않습니다. 부모는 그 나이때의 언어와 문화는 배운적의 없기때문입니다. 지수도 그렇게 되더군요. 처음엔 아이가 너무 헛갈려할까봐 영어로 응대해주기도 하였지만, 한국말을 들려줄 사람은 우리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한국말을 잃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단호하게 한국말을 고집하였습니다. 이름도 처음부터 한국이름을 그대로 고집하였습니다. 다행히 받침이 없는 글자라서 발음하기 어렵지 않았고, 처음에만 조금 헛갈려해도 다들 독특하다 기억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더군요.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우리도 이해하기에 상당히 불쌍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도 늘 또박또박 영어를 한국말로 고쳐주며 지내다 보니 1-2년정도의 상당히 지루하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거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만큼까지 배우게 됩니다. 아마도 한국의 한 시골마을에 단 세명만의 미국인 가족이 있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가족도 비슷한 정도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힘겨워 할겁니다. 

몇년이 지나고 한국에서 지수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와 그 가족이 연구소에 취직이 되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수보다는 2살이 어리지만, 한국말은 훨씬 잘하는 수빈이가 이사를 오게 되면서 지수의 한국말은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흉내낼 사람이 2사람에서 서너사람이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지수에게도 경이적인 일이었을겁니다. "세상에 한국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우리말고 더 있었구나" 뭐 이런........ 

지수의 경우는 1.5세라 불리웁니다. 이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중에는 말투가 어눌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다 지수와 비슷한 경로를 밟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다 한국말로 말하기를 포기한 아이들은 어릴때 가장 언어습득력이 빠른 시기를 놓치게 된 결과일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혹은 이곳에서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과정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아이들은 영어로이야기하고 부모는 한국말로 대답해줍니다. 다만, 영어를 한국말로 고쳐주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이해는 하지만,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나중에 열심히 연습을 하면 되긴하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부모자식간에..... 안그래도 사춘기에는 부모와의 대화를 단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언어문제가 끼게됩니다. 이때 부모들도 깊은 후회를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거지요.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아이를 둔 부모와 이야기를 하면 어릴때 심한 강요를 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2중언어를 구사하는것이 얼마나 큰 장점인지를 알게하고 적극적으로 배우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는 않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분들중에는 영어를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개는 한인타운에서 한국인끼리만 살아가기 때문이고, 그만큼 생활이 절박하기 때문에 영어를 제대로 배울 시간이 없습니다. 외국생활이 그리 녹록치는 않답니다. 그렇게 때문에 늘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어 못하는 한인1세들도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1.5, 2세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지금 지수의 한국말 수준이요? 상당히 잘합니다. 조금의 다른 뉘앙스도 잘 놓치지 않고 농담으로 받아칠만큼 정말 잘합니다. 그런데...... 까막눈만 겨우 면했을 뿐으로,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부모가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이 참 어렵더군요. 그래서 어릴때는 자기전에 책을 읽어주었는데, 한국동화책도 없었고 영어책만을 읽어주었지요.  나중에 조금 커서 5-6살쯤에 한국에서 조카들이 보던 책을 보내주곤 하였는데, 읽어주다보면 잠을 못잘 지경입니다. "호랑이가 뭐야? 논두렁이 뭐야? 사또가 뭐야?" 하다가 한페이지가 넘어가질 않더군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아무리 한국말을 잘 말할수 있어도 많은 단어를 주입하기는 쉽지 않더군요.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에 오니 한국라디오도 나오고 광고도 들을수 있습니다. 한글을 7일 혹은 10일만에 빨리 가르칩니다라는 광고도 나오더군요. 한글창제원리를 이용하여 소리로 빨리 가르쳐 10일만 배우면 신문도 책도 줄줄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속성에는 항상 문제가 따르지요. 아무리 잘 읽을 수 있어도 단어를 잘 모른다면 솔직히 외국어를 읽기만 하지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지수는 급기야 대학입시에 한국어보다는 스페인어를 택할거라는 이야기까지 하니 저희도 반쯤은 실패한셈인가요? 

추기1)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이 많을것 같네요. 여러분의 경험은 어떠신가요?  


1 편부터 보시려면.....

목록으로 가기  <-------- 

요 바로 밑에 손가락 모양을 한번 꾹 눌러주세요. 추천이라는게 그렇게 쉽다네요. 세상에 그냥 누르기만 하면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