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오래있다 보니 한국에 갈때마다 (예전에는 자주 간 편이지만, 현재는 거의 가본적이 없네요, 한 10년쯤...), 커다란 짐의 많은 부분이 책이었던 생각이 납니다. 짐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먹거리도 소중하였지만, 역시 가장 마음이 뿌듯한건 책이었지요. 그것도 모자라 공항 오면 서점에 들러 월간, 주간 시사잡지 및 가벼운 읽을거리로 손이 자꾸 가게 되니 참 오래된 병이었지요.
책은 늘 갈증입니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었고,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손님이 올 때마다 들고 오는 신문도 며칠을 두고 외울만큼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책장의 책을 2-3번씩 읽는건 약과였고, 한 열흘씩 늦게 비치되곤 하던 한국신문은 늘 유학생들의 경쟁으로 도서관 내 어딘가에 떠다니곤 하였기에 참 귀했습니다.
그래도 그땐 일본이었으니 그나마 배송비가 좀 저렴한 편이어서 지인이 인사치레로 "뭐 필요한건 없어?" 하면 절대 사양하지 않고 꼭 물고 늘어져 주소도 한자한자 받아적게 하여 책을 소포로 부쳐 받기도 했지요.
미국으로 왔으나 한국과는 가장 멀다는 동부였고, 한국과 관계된 것이 전혀 없던 깡촌이라서 그 문화적 고립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참조 xxxxx). 뉴욕의 북부 시골마을에 자리를 잡은지라 동네에 한국이라고는 오직 우리 가족이 다였고, 일본보다 오히려 신문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졌지만, 다행히 그때는 전화모뎀이나마 인터넷이 되어 심한 갈증은 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뉴스의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고 눈앞에 펼쳐지는 책이나 신문이 그리워서.....결국은 이삿짐에 접시를 싸왔던 일본 신문 쪼가리도, 아무렇지 않게 구겨 넣었던 잡지 책도 읽고 또 읽고..... 나중엔 일본에서 사온 샴푸, 린스 뒷면의 설명서까지 꼼꼼히 반복하여 읽고 있는 제자신을 발견합니다. 바로 그 무섭다는 문자중독이라는 난치병에 걸린걸 알게 된것입니다. 늘 무언가를 들여다 보고 정보라는 걸 취하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입에 가시가 돋고......... 한참만에 한번씩 한국장이라는 걸 보러 5-6시간씩 차를 타고 뉴저지 한인타운이나 뉴욕시티에 갔습니다. 차 한가득 일용할 양식을 가득 채우고 나면 그때서야 서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벌써 수백불을 먹거리에 투자한 후의 얄팍한 지갑이 서점에 즐비한 한국보다 2배 이상 비싼 책을 집는 손을 "때찌때찌" 하네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책보다는 생존이 중요한 시절이었으니...... 뭐 젊을때라 가난하기도 했고.....
미국은 너무 멀어 배송비가 장난이 아니라서 친구들도 이젠 더이상 책을 보내주지 않습니다. 보내달라기도 미안하고.....
그러다가 동네에 한국도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함께 지내게 된 친구가족이 이사오며 이삿짐의 반을 그간 모은 한국책으로 채워 온겁니다. 저 솔직히 책이 더 반가왔습니다. 흑흑!! (미안해요... ) 그리고 하나하나 대출하여 그 간의 문자 허기를 채워 나갑니다. 어차피 할 일도 별로 없고, 3시반이면 어두워 지는 북구 겨울의 밤도 길었습니다. 수개월 후...... 다 읽었습니다. 허걱! 도 다시 읽고 또 읽고.... 그때쯤에는 한글이고 영어고....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또 읽어 댔습니다.
그러던중 아주 흥미로운 곳을 발견했습니다. 대개 부산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인터넷 중고책방이라는 곳. 눈에서 광채가 나오더군요. 하루종일 뒤져 시리즈책도 다 맞추어 놓고 전화를 걸어보니 친절히 배편으로도 책을 부쳐준다며 입금을 하라고 하네요. 50권쯤 샀는데, 배송비까지 10만원이 조금 넘네요. 배는 운송료가 너무 너무 싸요. 다만, 한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거.... 콩닥콩닥의 한달이 지나고 50권이 박스에 실려 왔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그러고는 도 몇달에 걸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껴 아껴 읽었습니다.
(이런 사진만 봐도 책냄새가 나는것 같아 흥분한다는......)
그러다 어느날 하이북 (hibook)이라는 기계가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샀습니다 그땐 벌써 여러 경로로 벌써 어둠의 책파일을 많이 구해놓은 상황이어서 너무 좋아 보이더군요. 하지만, 제 눈이 흑백의 어두운 LCD에 적응하지 못하는걸 알고는 좌절했습니다. 눈이 아픈정도가 아니라 10초만 들여다 봐도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 지는 거였습니다. 바로 리턴.
그러다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왔습니다.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오는 데 이삿짐의 많은 부분이 책이었고, 그 콩닥콩닥 하는 마음으로 읽던 책이 너무 큰 짐이 되더군요. 사실 일본에서 미국으로 올때도 이사비용이 너무 비싸서 모아두었던 책 거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온 기억이 납니다. 그간 책 모으느라 정말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돈이 들어갔는데...
"에이씨 내가 다시는 책을 모으나 봐라......"
이사올 때 속해있던 연구실에서, 워낙 디지털 기기를 좋아하는 저를 아는터라 pocket PC를 작별 선물로 주더군요. 이게 또 물건이었네요. LCD라서 백라이트를 켜 글자를 표헌하는 것이긴 하여 눈에 비교적 큰 부담은 가지만, 컬러다 보니 바탕을 하얗게 글자를 까맣게 하면 제법 편하게 읽을수 있게 되더군요. 그때쯤에는 한창 인터넷에 읽을거리가 많이 돌아다닐때라서 거의 매일 눈이 밤이 (이렇게 표현하니 참 예쁘네요. 역시 탱이를 넣어줘야...) 되도록 읽었습니다.
그 이후 거의 종이책에 대한 미련을 접고, 이젠 디지털 책 모으기에 골몰합니다. 그러다 그러다........ 전자책단말기 (이북리더) 라고 하는 최첨단 디지털기기가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미국시장에도 있었으나 한글이 된다는 장점에 끌려 누나를 협박, 한국에서 발매된 전자책리더인 누트라는 걸 공수하여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LCD와는 달리 눈에 부담이 없는 화면, 거의 종이책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멋진 녀석이었지요. 밤에 볼수 없다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번 충전에 일주일은 너끈히 버티는 스태미너까지....
그 후, 누트를 거쳐 소니에서 나온 리더까지 오게 되었고, 지금도 30초의 시간만 나도 바로 켜고 읽어댑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된 노하우들, 기계의 장단점, 관련프로그램의 사용법들을 조금씩 여기에 나눕니다.
책은 책다워야 한다, 책을 팔랑거리는 재미로 책을 본다, 책냄새가 나야 책이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책을 선물로 받으면 또 속없이 다 잊고 무작정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다 다시 만약에 동부로 이사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면 또 한번 "에이씨!! 내가...... " 이러겠지요. ㅋㅋㅋㅋ
전 책보다는 글자를 중요시 합니다. 글이 담고 있는 힘, 정보 그리고 혼...... 책이나 디지털 책이나 담고 있는건 지은이의 혼이라는 생각으로 대하려 노력중입니다. 그 혼을 이젠 어둠의 경로가 아닌 직접 사야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며 앞으로는 구입한 책을 하나하나 디지털책장에 보관하고 이사할때는 딸랑 CD 한장으로 들고 가야지 하며 혼자 키득키득댑니다.
이런식으로 책을 읽다보니 지금도 서점에서 한국책을 들게 되지 않네요. 너무 비싸서...... 전자책으로 사면 몇배는 싼데 하는 생각이 자연히 듭니다.
여러분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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