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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기타교실

나의 기타 이야기 2 - 빚을 내서 기타를 사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아 기타를 사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어린나이였지만, 그런 사정을 뻔히 알기에 어머니께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 통기타는 장발한 형아들이 어깨에 둘러 메고 돌아다녀,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퇴폐와 상스러움의 상징 같은 거였습니다. 알기타만 덜렁 어깨에 매면, 바로 해수욕장분위기가 난다고 할까..... 그러니 형편이 된다해도 그 퇴폐의 온상같은 기타를 곱게 사주셨을리는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로망스가 자꾸만 떠올라 견딜수가 없었지요. 어떻게 하면 기타를 살 수 있을까만 연구했습니다. 간단한 방법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그래도 돈을 모을 수는 없었습니다. 쪼갤 용돈이 있어야지요. 

매일 눈앞에 어른거리는 기타에 끙끙대던 어느 날, 작은 누나가 그간 모은 용돈을 전부 털어 제게 주었습니다. 누나는 나보다 4살이 위였고, 나이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 않아 엄청 싸우던 사이였는데, 그렇게 마음을 써줄 줄 몰랐지요. 그 이후로 누나와는 절대 싸우지 않으리라 바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영창이 누나에게 언뜻 알아본 바로는 그 돈으로도 많이 모자라는 겁니다. 어떻게든 더 돈을 모으리라 결심합니다.

그러다가 집안이 조금 넉넉한 친구가 (영창이 누나 동생) 돈을 빌려 준다고 하여 생각보다 일찍 기타를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대출경험 전무였던 중학교 2학년에게 조금 과한 액수여서 망설였지만, 기타와 로망스의 유혹은 그런 우려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친구두셋과 광화문에 있는 그때 당시 박인희 음악사라는 곳에 갔습니다. 여러 가지 구경하다보니, 기타에는 두 가지 다른 기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하나는 클래식기타라 불리는 것으로 나일론줄을 사용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쇠줄 (?) 을 사용하여 노래부를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더군요. 볼 거 있나요, 로망스가 목표였는데. 당연히 클래식기타지요. 그냥 그때는 로망스만 생각했기에 뒷일은 생각안하고 클래식 기타를 덜컥 사 버렸습니다.  기타사면 누구에게나 다 주는 여벌 기타줄과 피치파이프, 엉성한 가요책 그리고 비닐 커버를 (조금만 날카로운 것에 닿아도 주-욱 찢어지는) 자랑스럽게 받아들고 나오는데, 오늘 당장이라도 로망스는 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뭐 현실의 벽은 높고도 높은것이었지만.....



새로 사온 기타를 꺼내어 열심히 닦으며 새기타의 냄새가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 난 이제 로망스 연주자가 될꺼야...... 그런데......... 

이 기타를 제대로 사기는 한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만큼 기타에서는 이상한 소리만 나더군요. 우선 로망스는 접어두고, 기타소리를 내는일을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몇 개의 코드를 가르쳐 주더군요. C, F, G7....... 사실은 저도 그 이상은 몰랐을 테지만.... 이 세 개의 매직코드를 배우고 나서, 받아온 노래책을 꼼꼼이 뒤져 이 세 개의 코드만 나오는 노래를 드뎌 찾아냈습니다. 장은하의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라는 곡입니다. 그 당시보다 조금 전에 무척 유행하던 곡으로 멜로디도 귀에 익고, 무엇보다 매직코드만으로 되어 있으니 딱이다 싶었답니다. 

일단, C를 잡고 징지기 징지기 두어번 해놓고, 시조 읊듯이 “외로울때면” 또다시 징지기 징지기 -멈추고-  “생각하세요” 이런식으로 하는데, 한번 노래를 다 끝내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될만큼 육체적인 노동강도 (?) 가 강한 곡이었지요. 시간은 또 오죽이나 오래 걸리던지 도닦듯 한곡을 끝내면 30분은 휘딱 지나가 있더라는...... 

그때는 대학가요제니 전일 가요제니 하는 젊은이의 가요제가 활성화 되어있었고, 전설적인 그룹 산울림의 전성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전 노래는 못했지만, 노래는 열심히 듣는 편이어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도 열심히 들곤하였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에는 음악성으로 똘똘 뭉친 작은별 가족이 나와 잭슨파이브의 곡을 번안한 작은꿈이라는 곡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심수봉이나 배철수의 활주로도 그 즈음의 대학가요제에 나왔고, 김만준의 모모도 또 갈래는 다르지만, 제3한강교의 혜은이도 인기를 끌었지요. 국풍으로 이용이 나왔고, 약사법위반 (?) 으로 활동금지를 당했던 조용필도 창밖의 여자로 다시 나왔습니다.  



물론, 저에겐 그 모든 것이 그림이 떡이었고, 오로지 징지기 징지기 “외로울때면” 징지기 를 반복했지요. 누구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고, 집안 식구들의 엄청난 눈치와 핍박속에 구석방에 쳐박혀 열심히 한곡만 연습했습니다. 다행히 제게 재능은 없어도 뚝심은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난 한놈만 패“. 여러달 한곡만 죽어라 연습하니, 나름대로 진전이 있더라구요. 물론, 기타만. 다른 노래는 코드가 너무 어려워 (?) 못하니 어차피 한곡만 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집중할수 있어 (?) 혼동도 없어 좋았답니다.

그사이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기타하는 친구로 통했고, 친구집에 가서 기타를 보면, 멋지게 그 노래를 하곤 했는데, 그때 친구들의 눈속에 떠오르던 무한한 존경심은, 수개월간의 고행과 찢어지는 손가락의 아픔을 상쇄하고도 남을 무엇이 있었지요. ㅎㅎㅎ 

그런데, 그럴때마다 같은 노래만 하니 친구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날 보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위기의식을 느껴지만,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는 거의 프로의 경지에 (?) 달했다는게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암튼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와 함께 한 일년쯤이 휘까닥 흘러간것 같습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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