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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기타교실

나의 기타 이야기 3 - 허리부러진 기타에 목놓아 울다

그러다가 좀 떨어져 대학을 다니던 형이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형이 기타를 보더니 능숙하게 잡으며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치며 노래하는 겁니다. 세상에나....... 

그래서 일단은 중간 목표를 그 노래로 수정하였습니다. 사실 그때 그정도 나이에 기타로 노래 한두곡 못하는 남자는 거의 없을 만큼 기타는 대중적이었으니, 대학에 다니던 형도 누구 어깨 너머로 배웠을겁니다만..... 암튼,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와는 달리, 너무나 복잡한 코드에 배우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C, G7은 알고 있었으니, Am, Dm를 새로 배웠는데, 이 세상에는 오직 코드가 세개만 있다고 알고 있던 제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네요. . 

그리고 징지기 징지기가 아닌 손톱으로 튕기는 아르페지오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전혀 다른 세상을 가르쳐주었네요.  기본이 탄탄했던 (?) 저는 그 다음해 봄까지 여러달 동안 이 노래와 은희의 “꽃반지 끼고”만 죽어라 연습, 기본 아르페지오를 배울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기타배우는 사람은 거의 다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나 꽃반지 끼고로 시작한다네요. 헐!!!

암튼, 기타 배운지 일년쯤 지나 남들 다 한다는 곡을 치게 되었지만, 레파토리는 처음의 무려 세배인 세곡으로 늘었고, 징지기가 아닌 튕기기를 배웠으니 그 만족도는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였네요..

한놈만 패다가 세놈을 패게 되었으니 지루하지는 않아 좋더군요. 게다가 또 몇달을 세놈만 패다보니 대강 또 달인의 경지 (?) 에 도달하게 되었고, 친구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다시 존경의 눈초리로 바꿀수 있었지요. ㅋㅋㅋㅋ 따식들 속도 모르고......
 
그사이 귀동냥으로 조옮김의 오묘한 이치 (?) 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귀동냥은 가히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예전 포크들은 사실 비교적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조만 옮기면 C, F, G7, Am, Dm 로 거의 대부분 커버가 되었습니다. 요즘 노래는 어림없지만..... 예를 들어, 조만 바꾸어 중간에 끼는 카포를 사용하면  “아침이슬”도 다 위의 코드로 대강 됩니다. 그리고 목장길 이나 길가에 앉아서 등등 그냥 위 코드로만 징지기징지기 하면 다 불러집디다.  물론, 생전 처음보는 코드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건 대강 넘어가주는 센스. ㅎㅎㅎㅎ


그때는 세광이라거나 하는 출판사에서 매달 가요책을 펴낼만큼 인기였고, 그런 가요악보들 뒷부분에는 펜팔란이란것이 있어 자신의 주소와 아니 성별을 적고, 이런이런 노래를 좋아해요 같은 간단한 사연을 써놓으면 맘에 드는 사람이 편지를 보내 펜팔을 해게되는 그런것이 유행했지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납니다. 


역시 찾아보니 있네요. 짜잔!!!!

저 위 16, 17살 여학생도 지금은 40대 아줌마가 되어있겠네요. 헐.... 

암튼 이런 가요책을 구하여 아는 코드가 나오는 곡을 일단 쳐보는 그런 나날이었지요. 노래는 몰라도 좋았습니다. 그냥 나 이거 칠수 있다 뭐 이런 혼자만의 시위같은거....

그러던 중, 정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기타를 어쩌다 따뜻한 방의 벽에 기대어 세워 놓았는데, 장력에 의하여 울림통과 넥의 연결부위가 부러져 버린겁니다. 이른바 허리부러진 기타. 그 기타를 부여잡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로망스 로망스 하면서요. ㅠㅠ

사실 기타 살 때 돈을 빌려준 친구에게 다 갚지도 못했던 때였습니다. 잠시 동안의 실수였지만 때는 늦었고......


형이 아교와 못으로 억지로 붙혀는 놓았지만, 보기에도 우스운데다 넥과 스트링 사이가 너무 떠버려 왠만한 아귀힘으로는 F가 잘 안 잡히는 기타가 되어버렸습니다. 클래식 기타라서 좀 넓기도 해서 한곡을 끝내기가 수월치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소리는 났습니다. 무술영화를 보면 사부가 제자에게 무술은 안가르치고 10리쯤 떨어진 냇가에서 물을 길어오게 시킵니다. 그것도 팔을 수평으로 펼친 상태에서 말이지요. 제자는 가르쳐달라는 무술은 안가르쳐주고, 물만 떠오게 시킨다고 꿍얼대고....나중에 우리의 사부왈 그것이 기초체력과 무술의 기초를 가르치지 위한것이었느니라~ 뭐 이런 유치한..... 사실이더군요. 워낙 기타줄과 판이 한 1센치쯤 떠있는 기타를 가지고 매일 연습을 하니 나중에 제대로 된 기타를 치는데, 누르는건지 뭔지 그냥 갖다대기만 해도 소리가 납니다. ㅋㅋㅋㅋ 

암튼 그 허리부러진 기타를 고 3 말때까지 간직했답니다. 

이런 힘든 일도 있었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니 기타가 상당히 능숙졌습니다. 물론, 일일이 손으로 바뀐 코드를 적어야 했지만, 조옮김하여 연주할 수 있는 곡도 많아졌지요. 연주라 하긴 좀 뭐한 수준이었지만...... 물론, 저의 노래는 능숙한 기타반주와 전혀 일치하지 못하고 항상 따로 갔습니다. 기타만큼은 어느덧 박치를 벗어나고 있던 것입니다. 뭐 나름 소문난 기타리스트 (?) 였지만, 음악 점수는 늘 "미" 이하였습니다.

그러다....잊을수 없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중3 2학기쯤에 빨래방망이로 아이들 구타하는 걸 유일한 낙으로 알던 국사 선생님이 (우리땐 많이 맞으며 학교 다녔습니다), 어느날 수업을 접고 칠판에 노래 가사를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막 유행하기 시작한 유심초의 “사랑이여”라는 곡으로  꿈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하는 최신 유행곡이었습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는 요지의 짧은 연설 후에 어설픈 시범을 보이시곤, 한명씩 지적하여 노래를 시키고, 못하면 죽어라 패는 엄청난 인권유린이 벌어졌던겁니다. 대부분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으로 제발 내번호가 비켜가기만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하는......... ㅠㅠ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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