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 사과라는 말보다 얼마나 예쁜지...
예전에는 능금을 촌스러운 이름이라 생각하였습니다. XX능금조합같은 말에나 남아있는 말이지요. 능금하면 고향마을 옆집 순이의 빠알간 볼이 생각나고, 부끄러운 새색시의 모습이 떠오르는건 능금이란 말이 가진 토속성때문이겠지요.
글을 쓰기 위해 잠깐 찾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는 한국의 사과는 홍옥, 국광, 부사 등등이 주종이었는데, 이젠 그런 품종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요즘 나오는 쓰루가니 홍로니 하는 이름도 너무 낯설기만 하고 어린시절의 추억을 잃은것 같은 허전함도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사과재배가 시작된것이 1901년이라니 비교적 최근이고, 사실은 토종이라 불리울만한것은 없겠지요. 인도니 스타킹이나 하던 언뜻듣기에도 대놓고 이국적인 품종의 사과도 있었네요.
암튼, 사과는 여러가지 추억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궤짝째 들여놓고 먹는건 역시 추석같은 명절때였네요. 왕겨가 잔뜩 든 상자에 사과를 넣어 놓은건 장기보관상의 의미가 있을거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추석의 풍성함은 여러가지로 느낄수 있지만, 평소에는 못보던 과일상자는 그중에서도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의미였던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릴때 형제가 많은 빈한한 살림이어서 좋은 과일을 배불리 먹을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사과는 항상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작고 볼품없는 사과를 자루에 담아 파는 장사를 만나면 멀리에서부터라도 그 무거운걸 혼자서 힘겹게 들고 오시던 어머니의 고단한 어깨도 떠오르고, 그 사과를 광에 들락거리는 서서방처럼 쏠락쏠락 빼내어 베어물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아마도 그것이 홍옥이나 국광이 아니었나 싶네요. 부사라고 부르던 후지사과는 달달하고 커다란 것이 여간 비싼것이 아니어서 많이는 못먹어봤습니다.
일본에서는 과일이 너무 비싸서 가난한 유학생이 사먹기에는 참 어렵더라구요. 사과든 배든 혹은 복숭아든 아이 머리만한 것을 한개씩 정성껏 포장한 채로 파는데.... 아이를 가진 아내에게도 거의 못먹일 정도였으니..... 오직 싼것은 오렌지였던가 하네요.
암튼, 미국으로 와서 슈퍼에 갈때마다 들여다 보고 만져보고 하던것도 사과입니다. 종류가 엄청 많습니다. McIntosh (그러고 보니 애플... 맥킨토쉬...아!), Red delicious, Golden delicious, 파란색 Granny smith, Braeburn Gala 등등......
도대체 HongOk은 어디에??? ㅋㅋㅋ 그 비싸서 못먹던 Fuji사과는 아주 흔하더군요. 뭐 암튼 갈때마다 종류별로 한가지씩 사서 시도를 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다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맛이 없어서. 후지사과도 더 이상 그 옛날의 후지가 아니더군요. 귤화위지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인데, 중국의 회수 이남에 잘 되던 귤을 강건너 북쪽에 심으니 탱자가 되었다네요.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이겠죠. 원래의 부사와 품종이 다른건지 귤이 탱자가 된건지...암튼 부사도 부사가 아니었지요.
우씨, 홍옥달란 말야!!!!! OTL
뭐 처음의 이런 간보기후에도 간혹 사과를 사오기는 하였지만, 그럴때마다 예의 그 "에라이, 내가 다시는 사과를 사나봐라" 이런 쌍욕이 나오더라는...... 그래서 5-6년을 무사과로 지냈습니다. 어느덧 잠재의식 속에는 "나는 사과를 싫어한다, 사과를 싫어한다. 레드썬!" 이러기 시작하였지요. 물론, 개인의 기호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다, 우리집에 놀러오신 Mrs. Kim (얼마전에 뉴욕에서 방문하시면서 영지버섯을 한보따리 선물해주셨던 분이죠 <--- 관련글 클릭) 이 사과를 들고 오셨습니다. 참 맛있는 사과라고 하시네요. 사과=싫어 가 꽉들어 찼던 시기였는데, 한입에 바로 훅 넘어갑니다.
Delicious!!!!!! (그래 이맛이야!!!)
그 이후로는 완전히 이 사과에 반해버렸고, 늘 가을을 기다립니다. 이 사과의 품종은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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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 Crisp입니다.
홍옥이 주던 새콤달콤한 맛에 아삭아삭 씹히는 치감 (crisp) 은 이름 한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 감탄하게 하지요.
사과는 초가을부터 품종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수확을 합니다. 이 Honey Crisp은 뉴욕에서는 비교적 늦은 가을인 10월말 경에 수확하더군요. 캘리포니아에 오니 사과는 주로 Washington 주 (이곳에서 나온 사과가 전국을 커버합니다) Honey crisp인데, 뉴욕보다는 일찍 수확을 하더군요. 9월 말경이 되면 서서히 슈퍼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사과는 아주 짧은 기간에만 잠깐 나오고는 바로 없어집니다. 그리 많은 양을 수확하지 않아서 이겠죠. Fuji나 다른 사과가 대개 파운드당 $1가량을 하면 이 사과는 그 세배인 $3가량이니 사과중에서는 최고가인 셈입니다. 그러나 워낙 짧은 시기에만 나오기때문에 비싸도 그냥 마구 삽니다. 그렇게 한두달 가량 열심히 먹고나면 다시 10개월 가량을 기다려야 맛볼수 있는 사과 Honey Crisp.
요즘 한창 제철이라서 거의 매일 먹습니다.
사과 하루 한알이면 의사를 멀리하게 한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을만큼 사과는 몸에 좋다죠. 다만 껍질을 벗겨 드시면 안된답니다. 농약걱정에 대부분은 껍질을 까서 드시지만,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고 중금속등의 노폐물을 잡아 배출시키는것은 사과에 많은 pectin이라는 성분으로 껍질에 분포하죠. 식초를 조금 넣은 물에 담가두었다가 흐르는 물에 씻으면 농약은 씻겨진다고 하니
사과는 껍질채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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