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기타교실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의 기타 이야기 11 - 모여라..... 드디어 “모여라” 했던 그날이 왔습니다. 모두 '보람찬 하루일을 끝마치고서' 당당히 퇴근을 하고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반 기대반의 마음으로 문화원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읍내 여기저기에 내건 포스터라는것이 언뜻봐도 허접한, 그냥 모여라... 일시...장소...시간 정도의 그런것이었기에 그냥 두어명만 모여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두명도 안오면 어쩌나 하는 그런 불안감이...... 대강의 준비를 마치고 학생들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다가오자 기대이상으로 대단히 많은 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참 기쁘더군요. 사실 준비과정에서 많은 의견 대립이 있었습니다.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의 성향이 워낙 맞지 않는데다, 음악스타일은 완전 달라서 그저 불협의 극치.... 포크에, 강한 스트로크에 일렉기타.. 더보기 나의 기타 이야기 10 - 방위..... 외로움에 목놓아 노래하다. 고향..... 충청남도 청양에서의 방위생활은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고향이긴 하지만, 어려서 떠난 곳이라 친구도 그리 많지 않았고, 워낙 화려하게 (?) 왁자하게 살다 와서 그런지 5시면 일과가 끝나는 방위의 특성상 남는 저녁과 밤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허전하여 송곳으로 허벅지를...... 그건 아니지만..... 모든 것이 낯선데다, 가까운 친구도 별로 없던 시골 생활...... 가기전에는 "그간 힘들게 일했으니 푹 쉬다 오면 되는거지 뭐".......안일한 생각이었더군요. 무엇보다 넘치던 열기를 발산할 수가 없으니 미치겠더군요. 밤마다 뒷산에 기타를 메고 올라가 허전한 가슴이 진정될 때까지 미친듯이 노래를 하곤 했습니다. 한밤중에 그것도 기타를 메고 뒷산에 오르던 방.. 더보기 나의 기타 이야기 9 - 드뎌 돈받고 노래를 시작하다 발표회는 최루탄가루가 흩날리던 캠퍼스의 강당에서 성황리에 치루어졌고, 준비과정에 심한 내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지요. 이런 음악 발표회란 단순히 노래하는 가수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여러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비교적 많은 돈이 들게 되므로 학교주위 여러 비지니스 스폰서를 모으고, 곡을 모으고, 반주와 노래를 연습해야 하지요. 홍보스텝은 발표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디자인하여 인쇄를 해야 하고, 또 팜플렛을 작성하여 인쇄해야 하지요. 기술스텝은 음향과 조명기기를 섭외하고 익혀 발표회 당일 차질없는 음향과 조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한두명이 필요한 일이 아니고, 또 한두시간 얼렁뚱땅한다고 되어지는 일도 아니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 두시간의 무대를 .. 더보기 나의 기타 이야기 8 - 홍길동은 나무를 넘고 음치는 노래를 넘다 드디어, 드디어...... 통기타 써클의 신입회원 모집 공고가 났습니다. 성호와 저는 공고를 보자마자 일찌감치 찾아갔습니다. 분명히 1학기에는 없던 써클이 생겨 참 신기하기도 해서 물었더니 원래 1980년에 생겼던 써클이 그 이후 없어 졌다가, 군대 갔다온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 1학기동안 재 창립준비를 하고 2학기에야 등록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고향에 찾아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배중에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마음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대학가요제를 목표로 하는 그런 써클은 아니었고, 알게 모르게 그런 외부활동을 경원하는 분위기이더군요. 건국대학교 건전가요회 (KUFA)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암튼 그러한 사정으로 중간 기수가 없이 우리보다 네 살 많은 82학번 형들이 주축이 .. 더보기 나의 기타 이야기 7 - 무대공포증을 없애라 우선은 무대공포증을 없애려 일부러 청중을 대상으로 노래하고 연주했습니다. 그 당시 재미있는것은 수업은 안해도 엠티나 종강파티는 꼭 했답니다. 동급생인데 얼굴도 모르면 안되니까...... 그때는 거의 우리의 독무대였지요. 그 당시 가장 인기있던 그룹은 해바라기였습니다. 우린 해바라기의 모든 노래들을 해체하다시피 했지요. 악보를 구하고, 그도 안되면 수없이 듣고 전주 간주의 애드립을 배우고 노래를 연습했습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우린 콘서트장에 노트를 들고 갔습니다. 대개 그들의 콘서트는 작은 무대가 많아서 비교적 용이하게 앞으로 파고들수 있었지요. 어떤때는 너무 작은 무대라서 무대위에 올라갈때도 있었네요. 종로 1가에 인기 DJ 박원웅씨가 경영하던 무어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에 해바라기가 고정출연한다는.. 더보기 나의 기타 이야기 6 - 혼돈의 시기, 같은 음악을 하던 친구를 만나다 고3이 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간 약간 아주 약간 미루어 두었던 공부를 해야 했지요. 제가 워낙 좀 독한데가 많습니다. 그간 손에서 놓지 않던 제 분신 같던 허리부러진 기타의 스트링을 일부러 뻰찌로 다 잘라버리고, 1년간 기타를 잡지 않으리라 결심합니다. 그리고 정말 기회가 있어도 일부러 기타를 잡지 않았습니다. 일단 다시 틀어박혀 공부만 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는 참 힘이 들더군요. 그래도 음악이 늘 옆에 있어 참을만 했습니다. 고3, 1년간의 제 음악적 감성을 지배했던 건 존 바에즈 (Joan Baez) 였습니다. 미국 포크뮤직의 살아있는 역사같은 사람이지요. 사실 주로 전설의 포크가수 밥딜런의 노래를 많이 불러 히트했지만, 미국 전통 포크도 거의 섭렵한 사람입니다. 제게 그녀의 카셋트.. 더보기 나의 기타 이야기 5 - 드디어 박치를 벗어나고 정태춘을 만나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에, 문학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시도 쓰고, 시화전도 하고 뭐 이런 상당히 정적인 활동들을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쯤 되니 학교에 한둘씩 전자기타를 연주하며 Hotel California니 Living next door to Elise같은 곡을 흉내내는 친구들이 늘어갔습니다. 또 그런 밴드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고등학교 축제음악을 끌어가게 됩니다. 뭐 암튼 개인적으로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기타도 이젠 레파토리도 많이 늘어 혼자서 여러가지 노래를 즐기는 (?) 수준이 되어있었지요. 학교생활은 뭐... 공부는 잘했지만, 학교수업을 잘 안듣고 교과서밑에 책을 놓고 꾸준히 책만 읽는 그런 생활을 견지했지요. 그때 왠만한 대하소설은 다 읽었던 것 같습니다... 더보기 나의 기타 이야기 4 - 생전 처음 노래로 뜨다 전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전편으로 가기 더보기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