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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축구의 추억과 월드컵 단상

오늘은 차분히 축구이야기를 해봅니다. 그냥 잡담입니다. 
이제 며칠후면 남아공 월드컵이 시작됩니다. 

제가 외국에서 월드컵을 맞이한게 이번이 벌써 5번째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TV로 "시청한" 것이 되겠죠.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일본에서 2002 한국/일본 월드컵은 미국에서 보았으니 참 얄궃게도 비껴갔다는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도쿄대첩이라 불리우던 1997년 9월의 대 역전극을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꿋꿋하게 보고 혼자서 환호했던 짜릿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전에 일본에서는 도하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의 현장도 일본인 친구들과 혼자서 싱글 거리며 보았네요 (그 덕에 한국이 골득실차로 올라가는 행운이 있었기에...ㅎㅎ). 

암튼,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안방에서 열린 한일 월드컵의 감동을 TV로만 지켜봐야 했던 점입니다. 운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릴적부터 축구경기를 즐겼던지라 이번 월드컵을 바라보는 감상도 남다르네요. 

제게 있어 축구는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 라는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2-3학년 무렵이 아니었을까 하네요. 작은 흑백TV에서 비치는 공놀림보다도 저게 무슨말인가 하던 "고국에 계신 동포"가 기억에 남네요.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고국에 계신 동포"에서 "해외에 계신 동포" 가 되어 버렸으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킹스컵과 박스컵의 기억
저 어릴때도 축구의 인기는 참 대단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참 못살았죠. 오히려 지금은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뒤지는 태국이나 필리핀이 그당시에는 훨씬 더 나았지요. 왕국인 태국에는 킹스컵 (King's cup) 이라는 축구대회가 있어 동남아 여러나라 선수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었습니다. 지금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암튼 1970년대에는 킹스컵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죠. 축구대회가 열리고 축구열기가 뜨거워지면 축구와 전혀 관계없던 저같은 꼬마들도 시장에서 파는 고무 축구화를 사서 신고 다닐정도었습니다. 킹스컵의 영웅은 단연 우리의 차범근 선수 그리고 허정무 선수 등이죠. 1976년에 한국팀이 우승하였다고 하네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스포츠로 민심을 잡아두어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축구를 육성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뒤를 이은 군인 삼총사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까지 이어져 프로야구, 그리고 올림픽을 차례로 도입하게 되죠. 암튼, 킹스컵이 부러웠던지 또 하나의 동아시아 축구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며 이름을 박스컵 (Park's cup)이라 명명하였지요. 킹스컵이나 박스컵이나....ㅎㅎㅎ



이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겁니다. 사실 그당시에는 왜 킹스컵이고 박스컵인지 몰랐다는..... 말레시아 주최의 메르데카컵과 더불어 아시아의 월드컵이었던 셈이죠. 킹스컵과 박스컵에서 우리의 숙적은 지금은 미얀마로 불리우는 바로 버마였습니다. 사실 그당시 즐길만한 스포츠란 축구, 복싱 그리고 김일의 시원한 박치기로 상징되는 프로레슬링정도였네요.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 4강의 추억
1983년 멕시코에서 개최되었던 청소년 축구대회 4강신화는 지금도 회자되죠. 박종환 감독이 이끌었던 청소년 축구팀이 소리소문없이 강적들을 물리치고 8강에 안착을 하였습니다. 전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때였는데, TV중계시간이 일과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소위 교실 응원을 해도 된다는 허가를 하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의 집에서 TV를 가져다가 함께 보며 응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에야 컬러 TV가 보급되었고 그 크기도 17인치였을겁니다만 교실의 맨앞에 놓고 뒤에서 보았어도 충분히 그 경기의 흥분을 느낄수 있을만큼 대단했죠. 지금의 대형TV에 지지 않을..... 김판근, 신연호 선수가 생각이 납니다. 결국 4강까지 갔고 더 흥분하여 보았으나 아뿔싸..... 상대는 브라질..... 결국 지긴 했지만 축구응원의 짜릿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동네 술집에서도 50인치 혹은 더 큰 화면에서 HD로 즐기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정도로도 훌륭했습니다. 그당시 가장 좋다던 아남TV라고 자랑하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ㅎㅎ 암튼, 우린 3년 내내 체육시간에 축구만 했습니다. 



차붐의 추
후에 군대스리가라는 말을 만들게 된 계기는 바로 차범근 선수가 활약했던 독일의 프로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가 덕일겁니다. 기껏해야 킹스컵 박스컵에서만 가끔 기를 펴던 한국축구역사에 해외 유수의 리그에 진출하고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뉴스감이었는데, 10년간 독일리그에서 대단한 업적을 쌓았던 엄청난 선수였죠. 사실 그때 대부분의 남학생들에게 차범근선수는 우상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순신, 아인슈타인같은 훌륭한 사람들이나 나온다던 위인전이 만화로 나오기도 하였으니 그 인기는 정말 대단했죠. 지도자로서의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바로 얼마전에 여론에 떠밀려 감독직을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네요.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물어 대회중 해임되는 일도 겪었으니 지도자로서의 영욕도 수차례 경험한것이 되네요. 차범근 축구교실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시고 그로 인하여 축구선수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많으니 사실 차범근씨가 한국축구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할것입니다.



현 국가대표 감독인 허정무 감독의 선수생활도 상당히 화려하죠. 차범근 선수와 동시대에 활약하던 선수로 1980년에 네델란드 아인트호벤에 입단하여 3년간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운동선수로서는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차범근선수와는 다른면에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축구실력도 대단했죠. 지도자로서의 길은 그리 화려하지 않으나 이번 국대의 감독으로 그의 지도력에 전세계가 주목할수 있도록 좋은 경기를 펼쳐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이번에도 마라도나를 냅다 걷어 차주었으면 하는.....ㅎㅎ)

그리고 월드컵....

1994년 미국 월드컵
외국에 살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죠? 그게 정말 그렇더라구요. 1994년 월드컵은 일본유학시절에 개최되었습니다. 1993년에 펼쳐졌던 지역예선은 일본과의 대결만 중계를 해주었던 관계로 전 경기를 볼수는 없었습니다. 월드컵 본선경기는 저 자신도 손바닥만한 기숙사에서 생활할때였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컸던 선배의 기숙사에 자전거로 달려가 몇명이서 함께 응원했습니다. 무시무시했던 독일과 스페인이 한조에 속해있던 조. 예상을 깨고 스페인과 2-2 무승부로 갔고, 유학생들은 점심만 끝나면 식당옆에 모여앉아 축구이야기만 했습니다. 애국심이 가장 고취되는 시기는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국제 운동경기랍니다. 특히 일본과의 시합이 가장 강하지만...ㅎㅎㅎ 암튼, 볼리비아는 비교적 만만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다시 비겼고, 실낯같은 희망속에 치뤄진 독일과의 승부는 안타깝게도...... 유학생들은 그 뒤로 월드컵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침부터 자정넘어서까지 연구실에서 연구에 몰두해야만 하는 사람들이어서 한국의 탈락에 더이상 무리해서 시간을 낼수 없었던 이유에서지요. 암튼, 그 해의 월드컵은 도하의 비극으로 일본 국대가 떨어져 버린 월드컵이었기에 일본 친구들의 부러움속에서 응원할수 있어 더욱 고소했던....ㅎㅎㅎ 사실 제가 처음 일본에 들어갔던 1993년에 일본 프로축구인 J리그가 개막하였고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오고 있었거든요. 그게 월드컵과 겹쳐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는데, 출전권을 따내는데 실패하였으니 일본 친구들의 낙담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미국에 도착하고 두어달 후에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유럽에서 열리는 게임이다 보니 한 여섯시간쯤의 시차가 있었고, 게임은 뉴욕시간으로 주로 아침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본선 리그의 한국이 속한 조에는 유럽의 강호 네델란드와 북미의 자존심 멕시코가 속해있었고..... 같은 시기에 함께 일하게 되어 무척이나 가까와진 산티아고란 친구가 있었는데, 멕시코에서 온 친구였지요. 지금도 친한 친구입니다만....ㅎㅎ 암튼, 월드컵 게임을 함께 시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주말이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혼자있던 그 친구의 집에 우리가족이 모두 가서 함께 보았습니다. 아침시간이었지만, 코로나 맥주도 한병씩 따서 기울이며 보게 되었지요. 그 이후로 우리는 순서대로 굳어진 얼굴을 숨기며 맥주병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전반 우리의 하석주가 골을 넣었고, 산티아고는 굳은 얼굴로 쓴맥주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봤지?" 하며 들이키던  단맥주가 갑자기 써진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습니다. 하석주 선수의 퇴장......... 블랑코의 활약과 한국선수들을 농락하던 멕시코 선수들의 발재간 등이 이어지며 결국은 1-3으로 패배하게 되었네요. 그때의 실망감은 더 컸습니다. 일본 친구들과 볼때는 늘 일본에 이겼기에 항상 웃는 건 저였는데 말이지요. ㅠㅠ 며칠후의 네델란드와의 게임은 5-0으로 참패하게 되었고 차범근 감독의 퇴진을 불러왔죠. 



2002년 한일월드컵
2002년 월드컵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개최국의 프리미엄이 있었다고는 하나 정신적인 부분이었겠죠. 4강까지 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대~한민국. 거리응원과 붉은악마 등으로 대변되는 길거리 응원 문화..... 어딜가도 보이던 붉은 물결..... 월드컵 기간중 가장 많은 스포트를 받은건 한국 축구선수나 히딩크 감독이 아닌 바로 이 응원문화였습니다. 어떤이는 북한의 붉은색 일색의 매스게임이 연상된다던 사람도 있을정도로 일체된 응원은 외국인의 눈에는 참 이색적으로 보였을겁니다. 한일 월드컵이 한국 월드컵처럼 된것은 국대팀의 선전도 있었지만, 거리응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한동안 외국에서 (미국아닌) 온 친구들을  만나면 꼭 나온던 화제가 바로 대~한민국과 거리응원이었답니다. 



한국(일본)에서 하는 게임이다 보니 밤낮이 바뀌어 참 고생했던 월드컵입니다 ㅠㅠ 또, 프리미엄채널에서만 중계를 해주는 바람에 (참 가난했던 때라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봐야 했지요. 그래도 그당시에는 동네에 나름 한국사람이 꽤 많아 (5명....) 함께 모여 응원을 하게 되어 그 전 월드컵에 비하면 응원도 재미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월드에서도 다시 한번 그런 광경을 볼수 있을까요? 
 


2006년 독일 월드컵
2005년에 샌디에고로 이주를 하고 맞게 된 월드컵 게임입니다. 그 당시 제가 재직하는 연구소에 축구사랑이라면 빠지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요. 먼저 대~한민국의 저와 모든 게임을 놓지지 않던 프랑스에서 온 친구, 그리고 축구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던 브라질 친구, 마지막으로 멕시코친구가 있었네요. 게임은 대부분 오전 10-11시 경에 시작하였는데, 우린 많은 게임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월드컵 기간중 거의 모든 일을 중단하고 월드컵 게임에 집중하였습니다. 뭐 이런..... ㅎㅎㅎ 우선 스케쥴표를 꼼꼼히 프린트하고 매일매일의 게임중 볼만한 게임들을 골랐습니다. 그리고는 게임시작 바로전에 넷이서 혹은 축구 좋아하는 미국 친구까지 다섯이서 큰 스크린이 있는 pub에 몰려갔죠. 네! 매일...... ㅎㅎㅎ 샌드위치 하나에 맥주를 시켜놓고 홀짝이며 주중에는 거의 매일 게임을 보았습니다. 그리 일하는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직업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지만 암튼 월드컵 기간은 정말 축제 그 자체였죠. ㅋㅋ 물론 자국의 게임에는 더욱 흥분하지만 좋은 게임을 보는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Pub에는 동네의 축구팬이 다 몰려오고 (주로 영국인들..) 왁자지껄하는 기분이 정말 좋더군요. 대한민국의 축구팀은 안타깝게 16강 진출에 실패하였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축구와 맥주에 푹빠져 살았던 행복한 한달이었지요.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미국에서 축구의 인기는 사실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음.... 인기가 정말 없다고 해야 하나요. 암튼, 무시당하는 스포츠중의 하나죠. 그래도 전경기를 중계를 해주니 (프리미엄 채널이지만요) 다행이죠. 대륙간 시차로 인하여 한국의 경기는 대개 새벽4시경입니다만, 녹화를 하고 두어시간 후에 일어나 볼 생각입니다. 올해는 HD완비이니 더욱 생생하게 즐길수 있게 되었네요.

여러분들은 월드컵에 어떤 추억을 가지고 계신가요?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