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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영어 이야기

8학년 딸아이가 말하는 2009년 수능 외국어 시험

며칠전 신문에 미국에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중반까지 공부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중학생 아이가 한국 중학교의 영어시험에서 성적이 무척 좋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더군요. 

언뜻 한국의 문법위주의 교육과 형식을 따지는 문제유형, 그리고 빈칸에  맞는 단어를 고르는 4지선다로 더욱 많은 혼돈을 주던 영어시험이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 



또 호기심이 자꾸 생기다 보니 결국 2009년 수능의 외국어 영역 시험을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학력고사볼때와는 달리 단어 몇개 문법 몇개 독해 몇개 같은 형태가 아니라 비교적 총체적으로 문제를 구성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듣기 평가가 생각보다 문제수도 많아 이제 고교까지의 영어교육의 경향이 문법위주에서 비교적 미국의 SAT에 가까운 실질적인 형태로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와! 대단하다. 

가만.....그런데, 왜 저 위에 생긴 저런 이상한 일이 생긴걸까 하는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일단 듣기평가의 문제들을 들어보았습니다. 
와! 대박!!!!!! 완전대박!!! ㅎㅎㅎ 

지금 8학년인 지수를 불러서 한번 들어 보라 하였습니다. 완전 웃기다고 뒤집어 집니다. ㅎㅎ 발음이나 억양이 정말 거의 로봇수준입니다. 수능문제 유출을 막기 위하여 기계음으로 만든 대화들인듯 합니다. 영국식도 그렇다고 완벽한 미국식도 아닌..... 호주나 뉴질랜드 계열도 전혀 아닌 아주 이상한 대화가 흘러나옵니다 지수가 웃다가 내용을 듣지 못합니다. 

먼저 말씀 드릴것은.... 제 딸아이는 한국말은 잘 알아듣고 말하는 편이지만, 어려운 건 잘 모릅니다. 한국에 살아본 적도 없는 아이이니 그만큼 영어가 더 익숙하다는 말이죠. 그러니 잘난척 하려는 그런 의도 절대 아니고... 사실 미국에서는 당연히 이런식의 시험이 있을수 없죠. 무척 신기해하며 몇개를 들어 보더니 재미있어 하네요. 문제가 어렵고 쉽고의 문제를 떠나서 그 이상야릇한 발음에 듣기평가의 목적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학원에서는 원어민 선생님들이 (호주, 캐나다, 영국 등등 심지어 나이지리아, 스페인 등등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영어로 말하는 걸 듣다가 테이프에서는 로봇이 말하니 일종의 다른 억양인데......................

뭐 그건 그렇고..... 실제로 필기문제를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20번 문제입니다.

1. 다음 글의 목적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If you are worrying about money when you are away, your enjoyment will suffer. Plan your budget in advance to give yourself time to research the costs fully. If you cannot get confirmed prices, get as many estimates as you can. Note the best price and the worst price and budget in between the two. Ideally, the budgeted figures will work out just about right. If they don’t, you will have to use your emergency fund to cover basic expenses such as food, transport, and accommodation, and there will be less money available for an unexpected situation that necessitates a sudden change of plan. So, be sure to make your budget realistic, so that you can be confident that you will be able to pay for all aspects of the trip.

① 여행 중 상품 구매 시 주의 사항을 알려주려고

② 여행 경비 예산 짜기에 대해 조언하려고

③ 과도한 여행 경비 지출의 위험을 경고하려고

 

초대박입니다. ㅎㅎ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영어가 어려운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옵니다. 지수가 한번 읽어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 집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말이야?" 뭐 대충 이런식의........ 중학교 2학년이 대입시험문제를 보았기때문에 어렵다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도대체 누가 만든 문장인지... 훌륭한 영문과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이 오랜기간 갇혀서 만들어 내는 시험문제로 압니다. 그러니 그분들께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누가 될것 같습니다만.......... 참담합니다. 한국말을 그냥 영어로 옮겨 놓은듯한 어색한 문장들이 자꾸 눈에 띄며 외국어 교육의 목적인 "외국어를 습득케 함으로써 국제인으로서 활동할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에 방해가 되는 "외국어는 참 어렵다" 를 가르쳐 주시는듯 하네요. 당연히 문법적으로 틀리진 않습니다. 그래서 미칩니다. 

첫문장은 아마도 여행을 갈때 돈걱정을 하게 되면 여행의 즐거움을 해치게 된다는 뜻같습니다. Your enjoyment will suffer라는 문장자체가 어색하기 이루 말할데가 없습니다. Plan your budget in advance to give yourself time to research the costs fully 도 도대체 무슨말인지 모르겠습니다. Plan the budget carefully in advance to avoid the unexpected expenses 같은 형식이 오히려 영어표현상 무난할것 같네요. If you cannot get confirmed prices 라는 말도 "가격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이란 말같은데, 일부러 말을 더 심하게 어려운 방향으로 꼰 것이고 누가 이런말을 사용한다는 건지......... 늘 이야기하는 문어체와 구어체는 다르기 때문에..... 물론 구어체와 문어체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쓰이지도 않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하네요. 중반의 문장은 만연체로 늘려놓기만 하여 논점도 흐리고 영어식의 표현이 안되니 어려운 단어로 동사를 (necessitates) 연결하여 더욱 문장을 어렵게 만듭니다. so that you can be confident that you will be able to pay for all aspects of the trip. All the aspects of the trip이라니 꼭 trip이라는 단어를 벌거벗겨 해부하는 인상을 주네요. 

Sheets of paper exist almost entirely for the purpose of carrying information, so we tend to think of them as neutral objects. 


도대체 왜이러세요. ㅠㅠ "종이는 완전 정보를 담는 목적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를 neutral objects 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뭐 이렇게 해석할수 있겠습니다만... Neutral objects가 먼가요? 이건 물리학 용어로 양전하와 음전하를 한꺼번에 띈 중립자를 말한다는데..... 아놔!!!


애구..... 아무리 변별력을 갖추어야 하는 시험이라도 영어를 이런식으로 만들어 놓으면... ㅠㅠ 

그래 너 잘났다 하시겠죠? ㅎㅎ 그러지 마세요. 저도 미국에서 영어로 글쓰고 말하고 하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이니 이 정도 말할수 있을정도는 됩니다. 영어가 제1 언어인 지수가 위 문제를 포함 영어문제를 몇개 보더니 "왜 이리 영어를 어렵게 만들어야 하는건지 모르겠네" 그러네요. 정말 어렵습니다. 뭐 지금 SAT reading comprehension 문제를 봐도 그리 어렵다고는 하지 않는 딸아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대부분의 시험문제가 이렇습니다.

1. 밑줄 친 He[he]가 가리키는 대상이 나머지 넷과 것은?

Flying over rural Kansas in an airplane one fall evening was a delightful experience for passenger Walt Morris. ①He watched the twinkling farmhouse lights below. Suddenly, the peace of the evening was broken when the plane’s landing lights started flashing on and off. ‘What’s happening?’ ②he wondered as he gripped the armrests. As the pilot was about to make an announcement, ③he thought, ‘This is it. He’s going to tell us we’ve got a major problem.’ Instead, ④he told the passengers, “In case you’re worried about the flashing lights outside the plane, I’m sending a signal to my kids.” ⑤He was relieved to hear the continued announcement: “They’re at home over on that hill to the left, and they just sent me a Morse code message saying, ‘Good night, Dad.’”

 

위 문장은 상당히 영어스럽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가져온 문장이겠만.... 리더스다이제스트 스러운 문장이죠. ㅎㅎ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돌아간 아이가 쫓아가기 힘든 시험이란... 변별력만을 중시하는 시험의 출제방향도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영어시험도 한몫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평소의 시험문제는 아마도 예전처럼 형식을 따지고 단어를 외워서 문장속에 맞는 걸 골라 넣고 하는 식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어-동사-목적어 혹은 보어가 들어가고 하는 문장형식 같은걸 미국아이들이 알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모를겁니다. 지수도 vocabulary test라고 열심히 어려운 단어를 외워가기도 합니다만, 받아쓰기처럼 단어만 받아 적는 시험이라기 보다는 용례까지 한꺼번에 test하는 방식을 취하더군요. 당연하죠. 자기나라 말이니.... 요즘은 문학시간에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읽고 있더군요. 

말하려는 골자는 영어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위에처럼 저렇게 공부해서는 국제인으로 활약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영어만 하는것도 아니니 정말 할수 없는 노릇일겁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영어로 말하고 듣고 할수 있는 아이들이 늘었고, 또 그 아이들이 커서 국제인으로 활약할 기회도 에전에 비하여 훨씬 늘었을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학교에서 도는 학원에서 가르치고 문제풀이라고 하는 영어들은 좀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니 참 아쉽네요. 

그냥 호기심에 한번 둘러본 것이었고, 잘난체하려는 것도 또 수능시험을 폄하하려는 의도도 아니니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안해도 되니 영어를 영어답게 공부시킵시다!!!!!!